이주민으로서 한국에 살다 보면 수고를 많이 하지 않아도 칭찬을 많이 듣게 된다. 한국어로 얘기하려고 조금이라도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면 발음이 나쁘거나 존댓말을 못해도 칭찬을 듣고, 김치를 맛있게 먹을 때 또 칭찬을 듣고, 김치찌개를 먹고 ‘시원하다’고 하면 한국인이 다 되었다는 칭찬을 듣는다.
한국인이 되었다는 말의 의미는 무엇일까? 법적으로 보면 한국 시민권을 갖고 있으면서 주민등록상 번호 뒷자리 첫 번째가 이주민일 때 받는 5∼8번이 아닌 1∼4일 때라고 할 수 있다. 좀 더 거시적으로 들여다보면, 한국에서 태어나 외국으로 이민을 간 사람과 그들의 자녀들이 여전히 한국인으로 받아들여진다. 선진국으로 가서 성공한 한국 사람들은 더욱 인정받는 듯하고 말이다.
문화적인 면에서 보면 좀 더 복잡해지는 것 같다. 전형적인 한국인은 매 끼니 김치를 먹고 록 음악보다는 트로트를 선호하고 월드컵이 되면 붉은 악마 셔츠를 입고 응원하거나, 명절에 고스톱이나 윷놀이를 하는 사람들을 뜻한다. 그러나 트로트 음악을 싫어하고 김치를 거의 먹지 않으며, 2002년 월드컵 때 한 게임도 시청하지 않은 한국인도 분명 존재하니 ‘한국인의 100가지 특징’ 같은 리스트를 작성해서 정해진 커트라인 상위에 존재하는 사람들만을 한국 사람으로 분류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지난주에 국민통합위원회에서 개최하는 ‘이주민과의 동행’ 설명 및 토론회에 초대되었다. 이번 회의는 이주민들이 한국인들에게 더 인정받고 이를 통해 한국 사회를 통합하고 발전시키기 위한 취지로 개최되었고, 한국에 장기로 거주하는 이주민들에 대한 한국인의 인식을 향상시키는 정책 제안이 주요 주제로 토론되었다. 토론회 전에는 탁상공론이 되지 않을까 우려했지만 좋은 아이디어와 제안들이 공유되는 매우 생산적인 시간이 되었다.
이주민에 대한 한국인의 인식은 물론 과거에 비해 월등히 높아진 것은 사실이나 다양한 인종으로 이루어진 이주민 개개인들에 대한 포용력을 개선하는 데는 조금 더 시간이 걸릴 것 같다. 인식조사에 따르면 개인으로서의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은 한국 사회에 비해 이주민들에게 더 호의적이라고 답했다. 이러한 조사 결과가 보여주는 것은, 개인 차원에서 한국인들은 이주민에 대해 호의적이라고 여기는 반면, 한국 사회 전체적으로 볼 때는 개인 차원에서보다는 더디게 다문화 과정이 진행되고 있다는 뜻일 것이다. 의지는 있는데 실행이 부족하다고나 할까?
이번 정부뿐만 아니라 역대 정부에서도 여러 좋은 이주민 정책들이 만들어져 왔었다. 필자가 서울시에서 일하는 동안에도 서울에 거주하는 이주민들을 지원하기 위한 여러 정책을 발견해 내고 수많은 제안서를 써냈지만 결국 예산 부족 등의 문제 때문에 실제로 실행에 옮겨진 정책은 많지 않다. 한국의 이주민 수는 점점 증가하는 추세이기 때문에 이번 국민통합위원회의가 한국 내 이주민들을 통합하고자 하는 시도는 매우 시기가 적절하다고 여겨진다.
물론 한국 정부와 한국민들만 노력해서 될 일은 아니다. 이주민들도 한국 사회에 통합되기 위한 노력을 똑같이 해야 진정한 인정을 받을 수 있는 일이다. 옳고 그른 것을 차치하고 몇몇 중동 국가에서 온 이주민들에 대한 한국민들의 혐오는 그 이주민들 자체를 향해 있다기보다는 한국인들과 융합하려는 노력이 적어서라고 생각하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 한국에 살면서도 자신들이 살던 나라에서 입던 옷, 음식, 전통만을 고집하고 오히려 이민자 자신들이 한국 문화를 배척한다고 여겨진다면 한국인들에게 인정을 받으려는 기대 자체가 정당화될 수 없을 것이다. 물론 각 나라의 코리아타운으로 가보면 한국 생활 그대로 사는 재외국민도 적지 않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또 한편으로 한국에 통합되려는 열망이 강한 이주민들이 한국인으로 귀화하기 위해서는 언어, 한국의 문화 등을 테스트하는 여러 시험에 통과해야 한다. 듣기로는 한국의 초등학교 6학년생 정도의 수준으로 시험 출제가 된다고 들었다. 귀화 시험보다 약간 아래 단계인 영주권 시험만 해도 언어 시험, 자산수준 검증, 한국의 역사, 지리, 문화 등을 수백 시간 학습하는 사회통합프로그햄 수료 등의 까다로운 자격 요건을 요구한다.
이민자들에 대한 역사가 조금 더 깊은 나라들을 방문해 보면 이민자들이 사회 곳곳에서 일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민자들은 택시운전사, 버스운전사, 심지어 경찰이나 군인이 될 수도 있고 이민자의 자녀들도 스포츠 국가대표팀 선수로 활약하는 경우가 많다. 이민자들을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마주친다는 한국인들의 응답이 54%를 넘겼지만 한국 사회에서 이민자들이 차지하는 사회적, 직업적 역할의 측면에서도 같은 응답 수준으로 높여가는 것이야말로 한국이 진정한 다문화 사회로 입문하는 관문이 아닐까 조심스레 제안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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