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은 어제 통일부 장관 후보자에 김영호 성신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를 지명하고, 국민권익위원장에 김홍일 전 부산고검장을 임명했다. 이어 19개 정부 부처 가운데 절반이 넘는 11개 부처의 차관 12명을 교체했다. 차관 인사에선 김오진 대통령실 관리비서관을 국토교통부 1차관에 기용하는 등 대통령실 비서관 5명이 전진 배치됐다. 대통령실에서 대통령과 호흡을 맞춰온 실세 차관들이 국정운영의 전면에 나서는 ‘차관 정치’를 예고한 것이다.
차관 정치의 배경엔 내년 총선을 앞둔 다목적 포석이 깔려 있는 듯하다. 하반기부터 가시적인 국정 성과를 내기 위해선 추진력을 갖춘 용산 출신 차관들이 부처를 장악하고 움직여야 한다는 의도가 엿보인다. 장관 교체로 인한 국회 인사청문회 정국도 부담이다. 거야(巨野)가 주도할 청문회 정국을 피하기 위한 우회로로 장관급 인선을 최소화하는 차관 정치 방안이 부상했을 것이다.
장관은 정부의 국정기조에 맞춰 부처를 운영할 권한과 책임을 갖고 있다. 윤 대통령이 대선후보 시절 부처 장관에게 전권을 부여하되 결과에 책임지도록 하는 ‘분권형 책임장관제’ 도입을 약속했던 취지다. 하지만 장관은 그대로 두고 차관만 용산 출신 위주로 바꾼다면 각 부처에서 장관의 영(令)이 제대로 설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권력의 추이에 민감한 공직사회는 장관의 한마디보다 실세 차관의 뒤에 어른거리는 윤심(尹心)만 살피지 않겠는가. 대통령실 직할 색채가 더 짙어진 차관 정치에선 각 부처의 자율적이고 창의적인 업무 추진을 기대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윤 정부가 담대한 대북 정책을 표방한 상황에서 대북 강경론자로 분류되는 인사가 통일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된 점, 윤 대통령과 가까운 검찰 출신이 권익위원장에 임명된 점 등을 놓고도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거대 야당과의 협치보다는 가치를 앞세운 ‘강 대 강’ 대치 정국은 아직도 해소되지 않았다. 윤 대통령이 해내겠다고 공언한 연금·노동·교육 3대 개혁은 여전히 답보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집권 2년 차의 윤 정부는 일방통행보다 소통을, 이념보다는 실용을 내세우는 전향적인 행보로 국정 쇄신에 나서야 할 때다. 이번에 장관급 개편은 소폭에 그쳤지만 수시로 장차관 인사를 하겠다고 했다. 과감한 국정 쇄신을 위해선 차관 정치를 뛰어넘는 인적 쇄신을 고민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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