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퀴어문화축제(퀴어축제)가 처음 열린 건 2009년이다. 서울에 이어 국내 주요 도시 중 두 번째였다. 대구 동성로에서 하다 2019년부터 현재의 중앙로 대중교통전용지구로 옮겼는데, 14년 동안 여러 우여곡절을 겪었다.
2014년에는 기독교 단체가 거리를 막고 연좌 농성을 했다. 당시 경찰은 “신고된 집회를 방해하면 집회방해죄로 체포될 수 있다”고 했으나 이들은 물러서지 않았고 결국 주최 측이 코스를 변경했다.
이듬해에는 경찰 측에서 먼저 “시위 장소가 주요 도로여서 심각한 교통 불편을 줄 게 명백하다”며 금지를 결정했다. 주최 측은 법원에 가처분 신청을 제기했고, 신청이 받아들여져 예정대로 열렸다.
2018년에도 기독교 단체와 충돌이 이어졌다. 이후 주최 측은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서를 냈고, 인권위는 경찰에 “제3자 방해로 집회 자유가 제한되지 않도록 적극 보호하라”고 했다. 경찰은 “법 절차에 따르겠다”며 이를 수용했다.
사실 질서 유지 책임이 있는 경찰로선 매년 논란과 충돌을 부르는 퀴어축제가 반가울 리 없다. 하지만 금지해도 법원이 허용하고, 주최 측을 보호하란 권고까지 나오니 진퇴양난 상황에서 어쩔 수 없이 질서 유지에 나선 것에 가깝다. 올해도 기독교 단체와 상인회가 집회금지 가처분 신청을 제기했지만 법원이 기각했다.
그런데 지난달 16일 퀴어축제를 둘러싼 가장 극적인 충돌이 발생했다. 대구시 공무원들이 경찰을 막으며 약 40분간 몸싸움을 벌인 것이다.
법원은 신고된 집회·시위의 경우 별도 도로 점용 허가 없이도 일정 부분 도로 사용이 불가피하다고 인정한다. 다만 “도로 점용은 지자체 허가 사항”이란 홍준표 대구시장 주장에도 일리는 있다. 한 정부 관계자는 “원칙적으로 집회를 신고한다고 도로 점용이 자동 허용되는 건 아니다. 장시간 도로 점용을 정당화하는 판례도 없다”고 했다. 시민 불편을 야기하며 주요 도로를 막는 시위가 일상화되는 것도 문제다.
하지만 홍 시장이 “공공성 있는 집회로 보기 어렵다” “1%도 안 되는 성소수자 권익만 중요하냐”고 말한 건 자칫 시위 성격을 규정하려는 것으로 보여 우려스럽다. 정부·지자체가 공공성이나 대표성을 따지기 시작하면 반대 세력의 집회에 대한 억압이나 법에서 금지한 ‘시위 허가제’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참고로 퀴어축제가 진행된 중앙로 대중교통전용지구에서 열린 첫 집회는 2016년 촛불집회였다. 당시 집회도 박근혜 정부에서 보기엔 공공성 없는 반정부 시위였을 것이다.
시 공무원과 경찰이 대낮에 몸싸움을 벌인 것도 볼썽사납다. 공권력이 제 살 깎아먹기식 대응으로 스스로에 대한 신뢰를 저하시키는 건 누구에게도 도움이 안 된다.
문제는 ‘퀴어 축제냐 아니냐’가 아니라 ‘집회의 자유와 시민의 권리 침해를 어떻게 조화시킬지’다. 이와 관련해선 대통령실에서 의견을 취합 중이고, 홍 시장도 법제처에 유권 해석을 의뢰했다니 합리적 결론이 나오길 기대한다.
물론 교통 불편 등을 이유로 퀴어축제에 반대하는 것도 자유다. 원한다면 손팻말 들고 반대 시위를 하거나 SNS 등을 통해 의견을 밝히면 된다. 집회·시위 등을 통해 자신의 의견을 드러내고 여론을 형성하는 건 민주주의 사회에서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오늘(1일)은 서울퀴어축제 퍼레이드가 중구 을지로 일대에서 열린다. 공권력끼리는 물론 시민 간 충돌도 없이 서로의 목소리를 내는 자리가 되길 바란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