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가 대기업집단의 총수(동일인)를 판단하는 5가지 기준을 마련해 어제 행정예고했다. 기업 최고 직위에 있거나 최대 지분을 보유하거나 경영에 지배적 영향력을 행사하면 총수로 지정됨을 공식화한 것이다. 1986년 대기업집단 제도 도입 이후 총수 지정에 대한 명문화된 지침을 제시한 건 처음이다.
대기업 총수로 지정되면 배우자와 친인척의 주식 현황과 계열사 간 거래 등을 신고해야 하고 허위로 신고하거나 누락하면 형사 처벌 대상이 된다. 일감 몰아주기, 상호출자 금지 등 각종 규제도 받는다. 그런데도 현행법엔 ‘해당 집단을 사실상 지배하는 자’라고 한 게 전부여서 기업 규제의 출발점인 총수를 자의적이고 불투명하게 선정한다는 비판이 많았다.
늦었지만 명문화된 기준을 공개해 기업의 예측 가능성을 높여준다는 점은 긍정적이다. 하지만 공개된 기준 역시 공정위가 주관적으로 판단할 여지가 있는 데다 외국인 총수 지정은 결론을 내지 못해 한계로 지적된다. 5가지 기준 중 몇 개를 충족해야 하는지, 뭐가 우선인지 등에 대한 명확한 잣대가 없어 ‘깜깜이 지정’에 대한 기업의 우려를 불식시키기엔 미흡한 것이다.
무엇보다 대기업집단과 총수 지정제가 한국에만 있는 갈라파고스 규제라는 점에서 제도 자체의 실효성을 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우리가 본뜬 일본도 1997년, 2002년 순차적으로 관련 제도를 폐지했다. 해당 제도는 1980년대 대기업의 독과점과 일부 지분으로 그룹 전체를 지배하는 재벌 체제를 견제하기 위해 도입됐다. 당시엔 당위성이 있었지만 현재 글로벌 개방경제에서 경제력 집중도는 완화됐고 대주주 견제 장치도 촘촘해졌다.
오히려 과도한 규제가 혁신 기업의 성장을 가로막고 있다. 자산 5조 원 이상인 대기업집단에 지정되면 65개 규제가 추가로 적용되고, 10조 원 이상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에 들어가면 68개 규제가 또 추가된다. 총수 지정은 기업가의 혁신과 도전 의지를 꺾는다는 점에서 더 심각하다. 30여 년 전 압축성장 시대에 통했던 제도를 찔끔 손보는 데서 벗어나 폐지를 검토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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