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南 내치며 日에 다가서려는 北의 술책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7월 3일 00시 12분


북한은 그제 외무성 국장 담화를 통해 “남조선 어떤 인사의 방문 의향에 대해 통보받은 바 없고 알지도 못하며 검토해볼 의향도 없다”고 밝혔다.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이 최근 고 정몽헌 회장 추모 행사를 위해 금강산 방문을 추진하는 데 대해 불허 방침을 분명히 한 것이다. 그런 북한이 북-일 정상회담을 위한 고위급 협의를 제안한 일본 측과는 중국 싱가포르 등 제3국에서 두 차례 이상 물밑 실무접촉을 벌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에는 인도적 차원의 방북마저 거부하면서 일본과는 비밀리에 접촉하는 북한의 속셈은 불 보듯 뻔하다. 과거 한국을 제치고 미국과 직거래하던 통미봉남(通美封南)의 또 다른 버전이자, 최근 강화된 한미일 3국의 대북 공조에 균열을 내보겠다는 상투적 술책이다. 일본인 납북자 문제에서 성과를 내려는 일본과 한미일 갈라치기를 시도하려는 북한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결과겠지만 구체적 진전을 이룰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북한은 이번에 우리 정부가 현대 측의 대북접촉 신고를 승인하기도 전에, 그것도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 같은 대남기구가 아닌 외무성을 내세워 불허 방침을 공개했다. 이미 금강산 관광지구 내 남측 건물들을 일방적으로 철거한 북한이다. 그런 불법적 재산권 침해 현장을 외부에 노출하지 않겠다는 계산 아래 한국에 대해선 분단 상황의 특수 관계가 아닌 적대적 관계에 있는 외국으로 취급하겠다는 메시지까지 던졌다.

그러면서도 북한은 일본이 내민 손은 잡았다. 물론 북-일 실무접촉이 본격적인 대화로 이어지기는 쉽지 않다. 일본인 납북이나 북핵·미사일 등 핵심 이슈를 둘러싼 입장 차가 워낙 크다. 나아가 이번 물밑 접촉 또한 한미의 양해와 조율 아래 이뤄지는 만큼 북한이 노리는 한미일 틈새가 생길 여지도 크지 않다.

북한이 대일 접촉에 나선 것은 최근의 국제정세 변화에 맞춰 어떤 식으로든 생존의 길을 찾겠다는 움직임일 것이다. 신냉전 기류를 틈타 중-러와 밀착했던 북한이지만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쟁의 수렁에 빠지고 중국이 미국과 관계 개선을 꾀하면서 국제 외톨이가 될 수 있다는 판단에 따른 탐색전일 가능성이 크다.

대남 단절과 대일 접근을 통한 북한의 노림수는 통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북한이 느끼는 절박감만 드러낼 뿐이다. 이번에도 북한은 민간 차원의 남북 채널이나마 열릴 것이라는 기대를 무색하게 만들었지만, 대화의 물꼬를 트기 위한 우리의 노력은 계속해야 한다. 북-일 접촉을 주시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北의 술책#외무성 국장 담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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