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쯤 전의 일이다. 교회에서 도움을 받으며 힘들게 살아가는 허약한 노인 한 분이 계셨다. 어느 날 그분이 한국전쟁 참전 용사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군인 출신인 교회 장로님이 그분을 도와드리겠다는 마음에 대화를 나누었다. 노인은 “나는 용사가 아니에요, 후방에서 물이나 날랐어요”라는 말씀만 하셨다. 후방에 계셨다고 해서 진짜 후방은 아니다. 그 노인이 속했던 사단은 전쟁 중에 수많은 전투를 겪었던 사단이었다. 얼핏 들은 이야기라 그 뒤에 어떤 대화를 나누셨는지는 알지 못한다. 그러나 그분이 일선에서 전투를 벌인 적이 없고, 전쟁 내내 2선에서 일했다고 하더라도, 전쟁 중에 정말 자신을 부끄러워할 어떤 일이 있었다고 해서 그분이 참전용사가 아닐까? 훈장을 받거나 손자에게 들려줄 만한 전공을 세운 적이 없다고 해서 그분이 존중받고 대우받아야 할 이유가 없는 것일까?
2차 대전에 참전했던 한 미군 병사가 손자에게 이런 말을 했다. “애야 나는 영웅이 아니란다. 영웅들 틈에 있었던 것뿐이지.” 본인이 정말 그렇게 생각하고, 전쟁에서 자신의 모습을 부끄럽게 여긴다고 해서, 우리가 그분의 영예를 제한할 이유는 없다. 훈장을 주고, 동상을 세우는 것은 특별한 전공을 기리는 것이다. 전쟁에 참가했던 모든 분들은 그 사실만으로도 존중받아야 할 기본적인 영예가 있다.
이순신 장군은 위대한 장군이며 민족의 영웅이다. 그만한 존경과 대우를 받아야 마땅하다. 그에 비해 장군과 함께 싸웠던 휘하 장수들, 부장들에 대한 이야기는 상대적으로 소략하다. 다행히 최근에는 드라마, 영화 덕인지 부하 장수들에 대한 조망이 이전보다는 활발하게 되고 있다. 그런데 뒤늦게나마 이런 정도의 존중이 더해지는 것도 이순신 장군이 난중일기에 부하 장수의 일화, 평판을 적어 놓았던 덕이다.
그 아래 일반 병사들로 가면 어쩌다 한두 명이 이름 정도나 등장한다. 좀 낫다는 장수들의 이야기도 소략하기 그지없다. 이런 것이 너무나 오랫동안 전통이 되었다. 덕분에 우린 감사할 대상과 그분들에게 감사하는 태도와 방법을 잊고 있었다. 이제는 정말 바뀌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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