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상은 악기를 처음 배우던 때부터 좋은 ‘팝’ 음악을 만들고 싶었다. 또래 친구들이 대부분 강렬한 하드록과 헤비메탈에 빠져 있을 때 윤상은 듀란듀란 같은 팝과 뉴웨이브 음악에 매료됐다. 그의 취향은 또래 사이에서도 돋보였다. 고등학교 친구들과 밴드 ‘페이퍼 모드’를 결성해 활동했던 윤상은 대학에 진학한 뒤 선배 음악인들을 쫓아 다녔다.
신촌블루스, 봄여름가을겨울 같은 선배들의 공연을 따라다니며 포스터를 붙이고 조명 보조를 하는 등 각종 잡무를 도왔다. 윤상이 좋아하고 동경한 음악인은 대부분 동아기획에 소속돼 있었다. 그도 선배들처럼 동아기획에서 앨범을 내고 싶었다. 하지만 동아기획의 김영 대표는 윤상에게만은 이상하리만치 관심을 두지 않았고, 그래서 서운한 마음도 가졌다. 내가 무엇이 부족할까 자책하기도 했다. 그렇게 서운함과 자책이 교차하던 어느 날 김현식에게 전화가 왔다. “그 노래 내가 불러도 되겠냐?”
윤상은 페이퍼 모드 시절의 곡들과 자작곡을 담은 데모테이프를 만들어 주변에 돌렸다. 그 가운데 하나가 김종진(봄여름가을겨울)을 통해 김현식에게까지 전달됐다. 데모테이프에 있던 노래 가운데 ‘여름밤의 꿈’을 듣고 김현식이 윤상에게 직접 전화한 것이다.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새파란 신인 작곡가였고 당시 관행상 스튜디오에서 함께 작업하진 못했지만, 존경해 마지않던 가수 김현식이 자신의 노래를 부르고, 같은 베이스 연주자로서 역시 존경해 마지않던 편곡가 송홍섭이 편곡했다는 것 자체가 믿기지 않았다. 음반 뒷면에 김현식과 송홍섭 이름 옆에 자신의 이름이 나란히 쓰여 있는 게 노래 제목 그대로 꿈같았다.
‘여름밤의 꿈’의 서사는 이렇게 완성됐다. 이제 막 경력을 시작한 음악 지망생의 ‘입봉’ 곡이 김현식이라는 불세출의 보컬리스트를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물론 서사만으로 노래가 생명력을 얻진 못한다. 늘 훌륭한 팝 음악을 만들고 싶었던 윤상의 새로운 감각은 김현식의 목소리로 더 빛날 수 있었다. 이때 김현식의 목소리는 아직 완전히 상하기 전이었다. 초기의 맑음과 후기의 거침이 섞여 있던 김현식의 목소리는 노래에 ‘여름밤의 꿈’이란 제목이 가질 수 있는 낭만을 부여했다.
이 노래를 처음 들었던 밤이 생각난다. 여름이었다. 창문으로 바람은 시원하게 불어오고 있었고, 노래는 한 청소년의 마음을 몽글몽글하게 만들어주었다. 그런 ‘음악이 있는 순간’이 지금 내가 이렇게 음악 글을 쓰게 한 원동력이었을 것이다. 계절에 어울리는 음악이 있기 마련이다. ‘여름밤의 꿈’을 겨울에 들었다면 감흥은 훨씬 덜했을 것이다. 윤상과 김현식은 내게 음악이 계절을 더 깊게 해줄 수 있다는 걸 처음 알려줬다. 누군가 이 글을 읽고 다가온 여름밤에 이 노래를 듣는다면 이 원고의 가치는 그걸로 충분할 것 같다. 짜증이 나고 불쾌해지기 쉬운 날들이다. 이 낭만이 부정적인 감정을 조금은 희석해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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