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내년 총선 목표를 과반인 170석으로 잡았다는 말이 나오자 민주당이 “선거 개입”이라고 비판하는 등 정치권의 신경은 온통 총선에 집중되어 있다. 핵심은 공천, 그러니까 누굴 영입하고 누굴 내칠지라는 데 이견은 없다.
정치권에서 성공적인 공천 사례를 꼽을 때 자주 거론되는 게 1996년 15대 총선의 신한국당 공천이다. 당 총재를 겸했던 김영삼 대통령이 이재오 홍준표 김문수 등을 정치권 밖에서 영입했다. 사람마다 호불호는 있겠으나 이들은 오랜 시간 정치권의 한 축을 담당해 왔다. 김대중 대통령 시절인 2000년 16대 총선에서 여당인 새천년민주당은 젊은 인재 수혈에 적극적이었다. 동교동계가 여권의 헤게모니를 잡은 상황에서 우상호 이인영 임종석 등 80년대 학생 운동권의 주류가 영입됐다. 이들에 대한 평가를 떠나 원내대표 장관 대통령비서실장 등을 지내면서 20년 넘게 민주당 계열의 메인 스트림으로 자리 잡은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그 후부턴 총선에서 누굴 발탁했는지가 별 기억이 없다. 2004년 17대 총선 이후 주호영(5선) 안민석(5선) 나경원(4선) 정도를 제외하고 여야에서 다선이 되거나 전국구급 활약을 보인 의원은 찾기 어렵다. 사람을 키우기보다 누굴 쫓아내는지가 전 국민적 관심을 모았기 때문이다. 2008년 18대 총선에서 친이계의 친박계 낙천, 2016년 친박계의 유승민 등 비박계 솎아내기가 대표적이다. 민주당 진영에선 2016년 김종인 비대위원장이 이해찬 노영민을 낙천시켜 이슈를 장악했다. 하지만 이렇게 내쳐져도 대부분 어떤 식으로든 복귀했다. 결과적으로 새 사람 영입만 제대로 못 한 것이다.
내년 총선은 어떨까. 여야에서 공천에 관여할 게 확실시되는 사람들 이야기를 들어봐도 어느 그룹이나 누군가를 꼭 영입하겠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여당에서 나오는 영입론이라고 해봐야 한동훈을 키로 하는 이른바 ‘검사 공천’ 여부와 그 폭이다. 야당은 이재명 대표를 축으로 친명 vs 비명 프레임에서 한 발짝도 못 나가 수혈론은 언감생심인 상황이다. 그만큼 총선 공천의 포인트는 어느 때보다 누가 안 나오냐에 쏠리는 형국이다. 특히 대통령실과 국민의힘 안팎에선 친윤 핵심들이 여차하면 총선 불출마 선언을 할 수 있다는 말이 나온다. 김기현 대표와 장제원 의원이 대표적이다. 정계 은퇴도 아니고 재·보선이나 다른 공직으로 얼마든지 컴백할 수 있음에도 “권력자들이 희생했다”는 것 이상의 캠페인이 없다고 보는 것이다.
한국 정치가 아무리 격이 떨어졌다지만 정치 서비스의 수요자인 유권자들에게 새로운 상품으로 다가가는 게 정상이다. 한국 정치에서 인공지능(AI), 반도체 공급망, 기후변화 등 새로운 입법 수요는 넘쳐난다. 시대 변화에 걸맞은 새로운 인재가 정치권에도 들어와야 한다. 하지만 지금은 정당이라는 점포의 매대에서 누구를 빼낼 테니 더 이용해 달라고 읍소나 하겠다는 것이다.
여야 인사들을 만나보면 “사람이 없다”고들 한다. 국민들의 정치 혐오감도 극에 달해 직업으로서 매력이 줄어드는 점도 없지 않다. 오죽하면 박지원 천정배 최경환 등 여야의 올드보이들이 다시 출마를 저울질할까. 그럼에도 헌법이나 국회법을 고치지 않는 한 국회의원은 여전히 가장 중요한 공직 중 하나다. 총선 시작도 하기 전에 새 사람을 찾는 노력보다 상대적으로 손쉬운 낙천 전략만 넘쳐난다면 한국 정치의 추락은 피할 길이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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