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래서 ‘늘공’과 ‘어공’의 차이가 있구나 생각했다.” 3일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기자간담회에서 김건희 여사 일가를 고려한 특혜라는 의혹이 나오는 서울∼양평 고속도로 노선 변경과 관련해 이렇게 말했다. ‘늘공(늘 공무원)’은 직업 공무원, ‘어공(어쩌다 공무원)’은 정무직·별정직 공무원을 뜻한다. 담당 공무원들이 실무적으로만 판단해 내린 결정일 뿐인데 오해를 사고 있다는 주장이다. 원 장관은 “이래서 정무직 장관이 필요하다”며 “즉각 원점에서 재검토하라고 지시했다”고 했다.
▷논란이 시작된 건 5월 국토부가 서울∼양평 고속도로에 대한 ‘전략환경영향평가 항목 등의 결정내용’을 공개하면서부터다. 2017년 첫 계획 단계부터 2021년 예비타당성 조사까지 줄곧 양평군 양서면이 종점이었는데 강상면으로 변경됐다는 내용이 알려졌다. 종점이 바뀌면서 총연장도 기존 26.8km보다 2.2km 늘어났다. 갑작스러운 노선 변경에 다른 이유가 있는 것 아니냐는 의심이 나왔다. 변경된 종점에서 500여 m 떨어진 곳에 김 여사 일가가 2만2663㎡의 땅을 갖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특혜 의혹을 제기하는 측에선 시점이 수상쩍다고 지적한다. 윤석열 대통령 취임 두 달 후인 지난해 7월 국토부가 양평군에 노선 관련 의견을 요청했다. 양평군은 종점을 강상면으로 하는 등 3가지 대안을 제시했다. 마침 양평군수도 국민의힘 소속으로 바뀐 터였다. 군수가 새로 취임하자마자 사업 방향이 바뀐 모양새가 됐다. 관광객이 몰리는 두물머리 인근의 교통난을 해소하기 위해 양서면을 종점으로 한 사업 취지가 훼손된다는 비판도 나왔다.
▷국토부 측은 “허무맹랑한 소리”라며 펄쩍 뛰고 있다. 전략환경평가를 위해 기존 안 외에 비교 가능한 대안을 함께 검토했고, 그 결과 강상면 종점안이 양서면 종점안보다 교통 수요가 많고 환경 훼손 구간이 적다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양평군 측은 노선 변경으로 양평군 내에 나들목(IC)을 만들 수 있어 군민이 더 혜택을 볼 수 있다고 판단했다고 했다. 양평읍·강상면 인구 증가와 지역 균형발전을 위해 강상면이 종점이 돼야 한다는 논리도 있었다.
▷도로, 철도, 공항 등 교통 사회간접자본(SOC) 사업은 건설 여부를 결정하는 예비타당성조사 이후에 기본 및 실시설계 과정에서 대안이 바뀌는 경우가 많다. 최적의 노선을 만들어가는 과정이고 지역 주민들 간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힌 사안이라 특혜 논란이 다소 섣부른 감은 있다. 하지만 정부가 노선 변경의 추진 과정과 근거를 사전에 주민들에게 명확하게 설명하지 않아 의혹을 키운 것도 사실이다. 늘공과 어공의 차이 문제가 아니라 정책 과정의 투명성과 소통이 핵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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