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파엘 그로시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이 어제 일본 정부에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해양 방류 계획의 안전성을 평가한 최종 보고서를 전달했다. IAEA는 보고서에서 “다핵종제거설비(ALPS) 처리수 방류는 국제안전기준에 부합하며, 인체와 환경에 미칠 방사능 영향도 무시할 만한 수준일 것”이라고 밝혔다. 그간 ‘여름쯤 방류’를 예고해온 일본 정부는 조만간 구체적 방류 시기를 결정할 방침이다. 그로시 총장은 모레 한국을 방문해 우리 정부에도 그 내용을 설명할 예정이다.
IAEA가 안전성을 보증한 만큼 일본의 오염수 방류는 계획대로 착착 진행될 전망이지만 정작 발등의 불은 우리 정치권에 떨어진 듯하다. 더불어민주당은 IAEA 검증의 신뢰성에 문제를 제기하며 대국민 서명운동과 장외집회 개최 등 전방위 공세에 들어갈 방침이다. 반면 국민의힘은 “국제기구의 검증 결과를 겸허히 받아들여야 한다”며 야당을 향해 ‘괴담 정치’를 그만두라고 주장했다.
원자력 문제에 관한 국제적 권위를 인정받는 IAEA의 안전성 평가를 못 믿겠다는 야당의 태도는 무책임하다. 과학적 의견을 신뢰할 수 없다면 근거를 대며 따져봐야지 불신의 낙인부터 찍는 것은 책임 있는 공당의 자세가 아니다. 그렇다고 야당 주장을 ‘괴담’이라고 몰아붙이며 수산시장 수조의 물까지 먹는 여당의 대응 자세도 한심하기는 마찬가지다. 국민의 걱정을 덜기는커녕 괴담의 2차 유포자로 나선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정부 대응 역시 미덥지 못한 게 사실이다. 그간 오염수 문제를 두고 일일 브리핑까지 해온 정부지만 한일 간 급속한 밀착 속에 사실상 일본 측 논리를 대변하는 것 아니냐는 따가운 시선을 피하지 못했다. 정부는 일단 IAEA 보고서와 우리 측 후쿠시마 시찰단 결과까지 검토해 대응책을 내놓겠다고 했지만, 그 대책은 대체로 오염수 방류를 전제로 해양 조사 확대와 수산물 검사 강화 같은 사후적 대책에 초점이 맞춰질 것으로 보인다.
과학은 공포를 이기는 힘이다. 하지만 역사상 전례가 없는 원전 오염수의 해양 방류인 만큼 아무리 공신력 있는 과학적 평가일지라도 그 불확실성에 기인한 근원적 불안을 해소하기는 쉽지 않다. 우리 국민 대다수가 공포까진 아니어도 심각한 걱정과 우려를 나타내는 이유일 것이다. 그런 국민의 혼란스러운 마음을 헤집어 놓는 여야의 정쟁은 공포와 불신을 키우는 불쏘시개가 될 뿐이다. 과거 광우병 괴담이 기승을 부린 것도 그 한편에는 ‘정치의 실패’가 있었음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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