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원한 파란색 방 안에 남녀 한 쌍이 마주 보고 있는 이 그림, 앙리 마티스가 그린 ‘대화’(1908∼1912년·사진)라는 작품이다. 줄무늬 파자마를 입고 서 있는 남자는 마티스이고, 검은 드레스를 입은 여자는 아내 아멜리에다. 정원이 보이는 창을 사이에 두고 부부는 사랑의 대화라도 나누고 있는 걸까?
마티스와 아멜리에가 처음 만나 사랑에 빠진 건 1897년. 두 사람은 이듬해에 부부가 되었다. 결혼 당시 마티스는 가난한 무명 화가에다 네 살배기 딸도 있었다. 아멜리에는 개의치 않았다. 1899년 모자 가게를 열어 생계를 꾸렸다. 두 아들을 연년생으로 낳아 기르면서 열심히 남편을 뒷바라지했다. 모델과 매니저 역할도 자처했다. 남편의 성공이 곧 자신의 성공이라 믿으며. 하지만 마티스 입장은 달랐다. 영감을 얻기 위해 계속 여행을 다녀야 했고, 가족보다 그림이 먼저였다.
‘대화’는 부부간의 말다툼 장면을 묘사하고 있다. 발코니 난간의 문양은 ‘NON’이라는 부정어를 연상시킨다. 대화가 안 되고 있음을 암시한다. 동시에 자신의 작품이 아직 미술계에서 인정받지 못하고 있음을 상징한다. 마티스는 파자마를 작업복으로 즐겨 입었다. 인도에서 유래한 파자마는 당시 유행하던 패션 아이템이기도 했다.
마티스는 아내와의 사이에 그림 같은 발코니 창을 그려 넣었다. 당신을 끔찍이 사랑하지만 그림을 더 사랑한다고 말하는 듯하다. 그러니 싸울 수밖에. ‘대화’는 마티스에게 다음 작업을 위한 선언서이기도 했다. 이 그림 이후 그는 현란한 붓질이 특징이었던 야수파 양식에서 벗어나 단순하고 평평한 새로운 양식을 선보인다.
그림 속 부부는 눈높이가 다르다. 그런 관계가 오래 지속될 수는 없는 법. 아내와 뮤즈, 매니저까지 자처했던 아내와의 관계는 결국 오래가지 못했다. 아멜리에는 가슴이 뜨거운 사람이었다. 남편과는 결국 여자 문제로 싸워 헤어졌지만, 훗날 나치 파시즘과 싸우는 레지스탕스 운동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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