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이정은]“세계 안보의 최대 위협은 우리” 美 외교전략 대가의 한탄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7월 5일 23시 4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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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연방수사국(FBI)이 지난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사저를 압수수색하자 트위터에서 ‘내전’을 언급한 횟수가 30배 급증했다. 지지자들은 “트럼프가 기소되면 내전이 일어날 것”이라며 “봉기를 준비하라”고 외쳐댔다. 반자동소총으로 무장한 지지자의 FBI 사무실 습격과 폭탄 테러 위협이 이어졌다. 트럼프 정부의 이너서클에 속했던 인사들은 사석에서 “내년 선거에서 정권을 되찾으면 반드시 보복할 것”이라고 벼르고 있다고 한다.

▷‘사피엔스’의 저자 유발 하라리는 한 방송 프로그램에서 “다음 대선은 미국 역사상 마지막 민주주의 선거가 될지도 모른다”고 했다. 망가진 정치 시스템과 극심한 양극화, 사회 분열 등이 ‘민주주의의 죽음’을 불러올 수 있다는 것이다. 세계적 역사학자의 충격적인 예고에도 이미 트럼프의 대선 불복, 1·6 의회 난입 사태를 연달아 겪은 미국 내에서는 “놀랍지 않다”는 반응이 나왔다. 인공지능(AI)이 만들어내는 가짜 뉴스와 허위 정보, 음모론이 내년 대선을 앞두고 벌써부터 꿈틀거리는 상황이다.

▷초강대국 미국의 정치, 사회적 혼란은 내부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는 게 문제다. 국내 현안에 발목 잡힌 미국의 리더십 약화는 곧바로 대외정책을 흔드는 변수로 작용한다. 급기야 “세계 안보의 가장 큰 위협은 바로 우리(미국)”라는 지적까지 나왔다. 미국 외교안보 전략의 구루로 평가받아온 리처드 하스 미국 외교협회(CFR) 회장의 입에서다. 20년간 최장수 CFR 회장으로 재직하면서 중국, 러시아, 북한, 이란 같은 대외적 위협 요인들을 분석해왔던 그가 ‘미국’을 최대 위협으로 지목한 건 처음이다.

▷불안정한 정치를 비롯한 미국의 내부 위험 요인들은 이제 외부 위협을 넘어서는 수준까지 악화했다는 게 하스 회장의 진단이다. 그는 이미 6년 전 저서 ‘혼돈의 세계’에서 미국 정치의 ‘기능 장애’가 악화하면서 대외적으로 치러야 할 대가가 커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잦은 대규모 정책 변화가 우방국들을 불안케 하고 적들을 대담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 미국은 2020년 이후 중동 내 영향력 약화, 유럽의 대중(對中) 전선 이탈 조짐, 자국에 맞선 중국과 러시아의 밀착 등으로 대외정책에 고심이 깊다.

▷다극화를 넘어 무극화 경향까지 나타나는 국제질서의 변동 속에서 미국의 외교 영향력 약화는 글로벌 불안정성을 높일 주요 요인이다. “미국의 국내 혼돈은 세계의 혼돈과도 불가분하게 연계돼 있다”는 하스의 경고를 흘려듣기 어렵다. 대미 안보 의존도가 큰 동맹국 한국으로서는 더욱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에 대한 우려에 앞서 ‘내부 분열이 가장 큰 안보 위협이 될 수 있다’는 메시지부터 다시 한번 새겨야 할 듯하지만 말이다.

#미국#외교전략#세계 안보#최대 위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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