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그제 하반기 경제정책방향 회의에서 기업 투자를 막는 결정적 규제를 ‘킬러 규제’로 지칭했다. 기업들이 투자를 아예 못 하게 만드는 규제를 단 몇 개라도 찾아내 시급히 걷어내겠다는 것이다. 어제는 국무조정실 주재로 킬러 규제 개선을 위한 관계부처 태스크포스(TF)를 발족했다. 구체적으로 어떤 규제가 킬러 규제인지는 언급하지 않았지만, 하반기 규제 개혁에 속도를 높이겠다는 강한 의지를 피력한 것이다.
하지만 규제 개혁이 이번에도 요란한 구호로 그치지 않을까 우려가 드는 것도 사실이다. 역대 정부가 보수, 진보 가릴 것 없이 출범 초부터 규제 혁파를 주요 국정과제로 제시했지만 용두사미로 그친 경우가 많았다. 이명박 정부의 ‘전봇대’, 박근혜 정부의 ‘손톱 밑 가시’, 문재인 정부의 ‘붉은 깃발’ 등 규제 폐해를 상징하는 구호만 남아 있을 뿐이다. 규제 철폐를 외쳤지만 정권 후반부로 갈수록 정작 폐지된 규제보다 새로 생긴 규제가 더 많아지는 기현상이 나타났다.
현 정부도 출범 초부터 규제를 ‘모래주머니’ ‘신발 속 돌멩이’ 등으로 표현하며 규제 개혁을 강조했다. 하지만 원격진료 허용 등의 신산업 분야 규제 완화는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했고, 기업이 현장에서 체감하는 불합리한 규제는 여전히 널려 있다. 대한상공회의소가 규제 완화 추진 경과를 추적해보니 첨단산업 분야에서 4년 전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된 규제 사항 중 올해 4월까지 개선된 비율은 9%에 그쳤다.
역대 정부는 집권 후 등장한 각종 문제 해결 과정에서 인기영합적 정책을 앞세우고 점점 규제개혁을 후순위로 미뤘다. 규제로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갈리는 사안은 조정하기보다 회피했다. 뿌리 깊은 규제 만능주의도 넘어서지 못했다. 관료들은 권한을 행사하기 위해 새로운 규제를 양산했고, 행정지도 같은 ‘그림자 규제’로 기업의 발목을 잡았다.
1%대 저성장의 늪에서 탈출하기 위해서는 전면적인 규제 완화를 통해 기업 투자를 활성화하는 것이 현실적인 해법이다. 꼭 필요한 부분에만 최소 규제를 적용해 포지티브 규제를 네거티브 규제로 전면적으로 바꿔야 한다. 시급한 규제개혁 입법을 위해 야당과 협의하고 설득하는 노력도 필요하다. 규제 개혁이 흐지부지되지 않으려면 정부가 임기 내내 강한 실천 의지를 이어가야 한다. 화려한 말만으로는 규제 개혁을 완성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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