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로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 모르는 사람들은 이제 방학이 시작되니 좋겠다고 생각하겠지만, 교수 입장에서는 본격적으로 연구가 시작되는 시간이다. 이 시작점에 잠 못 이루는 사건이 발생했다. 거의 1년 반 동안 고생한 연구 결과를 논문으로 써서 저명한 국제 저널에 투고했는데 그만 거절당한 것이다.
“띵동” 새벽에 거절 메일을 받고 울컥한 마음에 잠을 이룰 수 없었다. 고생해 쓴 논문인데. 위층 생명공학과 개구리 교수를 설득해 살아있는 쥐를 대상으로 실험한 연구였다. 윤리교육도 받았고, 쥐가 최대한 스트레스를 받지 않도록 신경 써서 실험을 진행했다. 물리학자로서 살아있는 생명체를 대상으로 하는 실험 과정은 어렵고 더디고 긴긴 실험이었다.
논문을 투고하면 3명의 심사위원이 논문을 검토한다. 물론 누가 심사하는지 전혀 알 수 없다. 논문을 해부한다는 것이 딱 맞는 표현 같다. 3명이 논문을 샅샅이 검토하고 연구자가 놓치고 있는 부분과 부족한 점을 보완하도록 하는, 일종의 검증 시스템이다. 이 심사 과정을 통과하지 못하면 논문은 세상에 나올 수 없다.
실험을 진행하고 데이터를 분석하고 논문을 써서 저널에 투고하고 심사를 거치기까지 거의 1년 6개월이나 걸렸는데, 그 결과가 암울한 상황이라면 어느 누가 절망하지 않을까? 하지만 이런 과정이 과학이다. 지극히 정상적인.
며칠을 끙끙 앓고 지내다가 그래도 다시 시작해 봐야지, 하고 있다. 논문이 통과되었다면 즐거움에 들떴을 것이다. 그러나 즐거움의 시간은 순간이다. 하루 이틀. 항상 이런 즐겁거나 괴로운 과정이 계속 반복되었다. 물리학자의 숙명처럼.
과학적 검증엔 예외가 없다. 아인슈타인도 예외가 아니었다. 아인슈타인은 거대한 중력이 존재하는 곳에서는 마치 잔잔한 호수에 돌을 던지면 물결이 퍼져나가는 것처럼 중력파가 존재한다고 생각했지만, 자신의 틀린 수학적 계산을 믿고서는, 국제학술지 ‘피지컬 리뷰’에 중력파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논문을 투고한 적이 있다.
수학적 오류를 검토한 편집장은 이 논문을 거절했다. 당연한 일이었다. 아인슈타인은 홧김에 다시는 이 저널에 논문을 투고하지 않겠다는 편지를 보냈다. 최고의 물리학자에겐 자존심 상하는 일이었을 것이다. 후에 자신의 계산이 틀렸다는 것을 확인한 아인슈타인은 다시금 정중히 사과했다. 이 또한 과학적 과정의 하나다. 이런 검증 과정이 과학을 지탱하는 축 아닐까? 참고로 중력파는 2015년 9월 지구에서 처음으로 검출되었고, 중력파를 과학적으로 입증한 물리학자들은 2017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예전에 한 논문을 저널에 싣기까지 수정하는 데 1년이 걸린 적이 있다. 심사위원의 지시사항을 맞추던 시간은 힘들고 길었다. 당시는 “해? 말아?!” 이런 갈등이 어려운 시기마다 들었다. 그러나 그 시기가 지나고 나니 더 훌륭한 논문이 되었다. 지나고 보니 나를 성장시킨 시간이었다. 그렇다고 해도, 그런 성장의 시간을 반복하고 싶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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