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7일(현지 시간) 프랑스 파리 북서부 외곽 도시 낭테르에서 교통 검문을 피하려다 경찰이 쏜 총에 맞아 숨진 17세 알제리계 청년의 죽음으로 전국 곳곳에서 1주일가량 폭력 사태가 일다가 이제는 진정을 찾는 분위기다. 시위는 잦아들고 있지만 언론들은 사태의 원인을 분석하고 해법을 찾느라 여전히 시끌시끌하다.
사실 프랑스에선 이런 일이 처음은 아니다. 대표적으로 2005년 북아프리카계 10대 소년 두 명이 경찰 검문을 피하려다 변압기에 감전된 사건이 알려지며 폭동 사태가 발생한 바 있다. 하지만 프랑스인들은 이번엔 그때보다 더 당황했다. 당시 3주간 폭동으로 인한 피해 규모를 이번엔 1주일도 안 돼 훌쩍 넘어설 정도로 시위 강도가 심했기 때문이다. 특히 경찰서, 시청 등 공공기관이 많이 공격을 당한 점이 특징적이다. 우파 야당인 공화당 대변인의 자택이 습격을 받아 프랑스 사회의 충격이 더욱 컸다. 시위대가 정부와 정치인들에 대한 강도 높은 불만을 드러낸 셈이다.
이는 이민자를 포용하지 못하는 국가와 정치권에 대한 불만 때문이기도 하지만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곪을 대로 곪은 ‘방리외(대도시 근교 지역) 문제’가 뿌리 내리고 있다. 파리 같은 대도시는 발전하는 반면 그 주변을 둘러싼 방리외는 낙후되다 보니 두 지역은 확연하게 단절됐다. 저렴한 집값과 물가 때문에 방리외에 자리 잡은 이민자들은 국가의 투자나 복지에서 소외됐다는 불만이 가득하다. 주민들은 “국가가 우리를 버렸다”고 냉소했다. 기물 파손으로 피해를 입은 주민들은 “경찰마저 손을 놨다”며 보호를 바랄 곳이 없어 불안해했다.
지역 불평등의 심각성은 지표로도 드러난다. 프랑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는 8일 프랑스 일간 르몽드 기고에서 프랑스 하위 낙후지역 5곳 대비 상위 부유지역 5곳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 비율은 1900년 3.5에서 1985년 2.5로 떨어졌지만 2022년 다시 3.4로 상승했다며 “가난한 교외 지역과 시골 마을이 상당한 불평등에 시달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방리외에 재정이 돌지 않는 건 기본적으로 부족한 세수 때문이다. 빈곤과 실업률로 경제가 살아나질 않으니 지방정부의 재원이 부족할 수밖에 없다. 여기에 기업들도 투자를 꺼리고 있다. 파리 외곽 센생드니주에 있는 스브랑에선 5년 전 대형 유통기업 카르푸가 첫 매장을 열려다 포기했다. 카르푸 측은 “개점을 위한 조건이 충족되지 않았다”는 두루뭉술한 이유를 댔다. 당시 이 지역 빈곤율은 약 30%, 실업률은 13%로 프랑스 도시 중 최고 수준이었으니 기업으로선 구매력이 충분하지 않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지역 주민들은 “우리는 다른 동네엔 흔한 카르푸를 이용할 권리조차 없느냐”며 분노했다. 프랑스에서 가장 가난한 도시 스브랑은 이렇게 기업들의 외면을 받으며 일자리 기회마저 박탈당하고 더욱 빈곤해지는 악순환에 빠졌다.
다들 피하는 방리외를 중앙정부가 나서 도울 법하지만 개혁과 중도를 표방했던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마저 방리외에 무심하단 평가가 많다. 마크롱 대통령이 집권 이후 방리외 지역을 거의 찾지 않았고 대화를 시도하지 않았다는 불만이 나온다.
심각한 저출산 문제로 이민 정책을 설계해야 하는 한국 정부는 지방소멸 문제도 안고 있어 프랑스의 방리외 문제가 주는 시사점이 크다. 인구 부족, 경제 침체 등 각종 문제가 집약된 지방을 살리는 정책은 선거 때만 반짝 등장할 과제가 아니다. 정부가 긴 호흡으로 인구와 지방 문제를 같이 해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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