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나라의 잡지를 보는 건 잡지인인 내 일상의 일부이자 즐거운 취미다. 그중에서도 일본 패션잡지 ‘뽀빠이’ 7월호는 나오기 전부터 기다리고 있었다. 이 잡지는 매달 큰 특집이 있다. 이번 호는 서울 특집이었다. 한국 서점에 나오자마자 펼쳐 보았다.
나는 2023년 7월호 ‘뽀빠이’의 서울 특집이 특별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일본의 수많은 잡지 중에서도 이 매체는 세련됨 부문에서 세계적인 인지도와 권위가 있다. ‘뽀빠이가 무엇을 어떻게 소개했더라’는 사실이 각국의 디자이너나 에디터들에게 회자된다. 나는 주제 선정이나 소재의 시각화 면에서 2010년대 세계 라이프스타일 잡지계 가장 중요한 매체 중 하나가 ‘뽀빠이’라고도 본다. 실제로 2010년대 ‘뽀빠이’의 중흥을 이끈 편집장 기노시타 다카히로는 유니클로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발탁되어 영전했다. 그런 잡지가 내 고향 서울을 다루니 기대도 되고 궁금하기도 했다.
일본 잡지는 여전히 평균 정보 완성도가 높다. 기획이 성실하고 취재가 집요하다. 그렇게 풍성한 서울 특집 중 코미디언 ‘다나카’가 나왔다. 인기 코미디언 김경욱 씨의 ‘부캐’다. 다나카 캐릭터 자체가 한일 교류의 흔적 그 자체다. 일본 대중문화의 여러 요소 중에서도 ‘00년대의 호스트’를 찾아 그를 코믹 캐릭터화시켰다는 건 김 씨의 높은 일본 이해도와 경험을 보여준다.
뽀빠이 7월호에는 한국의 패션 브랜드 ‘디스이즈네버댓’도 나왔다. 1990년대의 느낌에서 영향을 받은 스트리트웨어 패션 브랜드다. 이 브랜드의 대표 3인도 일본의 영향을 받았다. 1990년대의 도쿄는 세계에서 가장 세련되었던 지역 중 하나다. 이들은 젊을 때 도쿄에서 생활한 적이 있고, 스스로도 일본 문화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숨기지 않는다. 이들은 매년 성장해 코로나 기간에 일본 도쿄의 세련된 동네 하라주쿠에 매장을 열었다. 이 역시 민간 한일 교류의 한 상징이라고 나는 생각하고 있다.
이번 ‘뽀빠이’는 남다른 점이 있었다. 더블 커버다. 요즘 잡지들은 수익성을 높이기 위해 같은 내용에 커버만 몇 개씩 내는데, 이번 ‘뽀빠이’ 더블 커버의 표지 모델은 한국의 신흥 대형 걸그룹 뉴진스였다. 12쪽 분량 기사 마지막에 프로듀서 민희진 인터뷰가 실렸다. 그 역시 ‘뽀빠이’를 오래 읽어 왔고, 시부야계 등 음악이나 오즈 야스지로의 영화 등을 좋아한다고 했다. 오늘 이야기한 사람들의 나이는 비슷하다. 김 씨와 디스이즈네버댓 대표 3인은 1983년생 또래, 민희진은 1979년생이다. 이 나이 사람들이 청소년기 트렌드에 예민했다면 실시간 일본 문화는 뗄 수 없는 것이었다. 그때를 겪은 사람들이 지금 한국 트렌드를 만들고 있다.
일본도 한국의 영향을 받는다. 사실 더블 커버는 잡지 판매가 떨어지는 상황에 대응하는 한국 잡지계의 고육책이다. 일본 잡지의 더블 커버 도입은 종이 잡지 업계가 국적을 초월해 비슷한 고민을 한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이렇듯 개인적이고 실질적인 영역에서 한일 교류는 이미 진행 중이다. 여기서 각종 정치적 키워드는 맞고 틀리고를 떠나 그냥 좀 이상한 이야기다. 앞으로도 한일 양국이 재미있는 걸 많이 만들었으면 좋겠다. 나도 언제든 함께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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