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칼럼/김현수]美 지방정부까지 사활 건 기업 유치 작전

“오세요” 한글 보도자료에 방한 ‘홍보전’까지
세계가 뛰는 공급망 재편, 한국도 명운 걸어야

김현수 뉴욕특파원

“왜 공장 부지를 텍사스주로 정했나요?”

지난달 미국 텍사스주 플레이노시 SK시그넷의 전기차 충전기 공장 준공식 현장에서 만난 임원들에게 이같이 물으니 의외의 답이 돌아왔다. “제조업 경험이 많은 인력 확보 이점뿐만 아니라 편리한 행정서비스가 결정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우리를 위해 시 정부에서 태스크포스(TF)를 만들어주겠다고 했습니다. 사안마다 다른 유관 부서에 연락하는 것도 일이니 규제를 비롯한 모든 민원은 한 곳을 통해 해결하라는 전향적 태도에 저희도 놀랐죠.”

최근엔 텍사스주 테일러시 경제개발공사(EDC)로부터 “테일러시로 오세요”라는 제목의 한글 보도자료를 받았다. 테일러시는 삼성전자가 22조 원을 들여 반도체 공장을 짓는 곳이다. 자료에서 마크 토머스 테일러시 EDC 사장은 “삼성이 테일러시를 선택한 것은 우리 지역의 큰 승리다. 우리 지역에 많은 기회를 가져다줄 삼성 반도체 팹(공장)을 지원하기 위해 한국 협력사 유치에 큰 노력을 하고 있다”고 했다. 협력회사까지 유치해 산업단지를 키우겠다며 한국 기업 ‘원스톱 지원’ 홍보에 나선 것이다.

텍사스주뿐만 아니라 조지아주, 인디애나주, 미시간주 등 각 주는 제조업 부흥에 지역 경제의 명운이 달려 있다며 투자 유치 전쟁에 뛰어들고 있다. 미중 갈등 속에 반도체, 전기차 배터리, 인공지능(AI) 등 첨단산업 공급망이 재편되는 과정에서 주요 생산지로 부상하겠다는 열망에 온갖 유인책을 짜내고 있는 것이다. 직접 한국에 가서 ‘홍보 활동’을 벌이겠다는 의지도 불태운다. 뉴욕 재계에 따르면 필 머피 뉴저지 주지사는 40여 명의 대표단을 이끌고 10월 방한해 청정에너지와 스타트업 등 광범위한 분야에서 한국과의 협력을 모색할 예정이라고 한다.

미 연방정부가 인플레이션감축법(IRA), 인프라법, 반도체법을 바탕으로 막대한 보조금을 뿌리고, 지방정부가 추가 보조금에 행정의 ‘레드카펫’까지 깔아주니 세계 기업이 몰리지 않을 수 없다. 미 재무부에 따르면 올해 4월 기준 전자산업 제조업 실질 건설 지출은 2022년 초기에 비해 4배 이상 늘었다. 국내 재계 관계자는 “미국이 제조업에서 손을 뗀 지 오래되다 보니 인력 확보 및 교육, 공급망 구축까지 갈 길이 먼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적극적 지원책이나 미중 갈등에 따른 지정학적 리스크를 분석해 보면 감당할 만한 비용”이라고 말했다.

세계 각국 정부도 공급망 재편 속 기회 찾기에 사활을 걸고 있다.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는 최근 미국 방문에서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를 비롯해 애플, 마이크로소프트(MS), 오픈AI CEO들과 만나 눈길을 끌었다. 인도는 악명 높은 관료적 행정이나 규제, 사회 인프라 부족에도 불구하고 중국을 대체할 ‘세계의 공장’ 후보로 떠오르고 있다. 지정학적 반사이익을 놓치지 않기 위해 글로벌 테크 산업에서의 인도계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도약을 꾀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도 최근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규제 완화 등 투자 유치에 나서고 있지만 매번 그랬듯 여론의 관심이 쏠릴 때만 ‘규제 개혁 혁파’ 구호에 그칠 것이란 회의적 시각도 적지 않다. “공장 증설을 하느라 규제 골머리를 앓느니 부동산 투자나 할 걸 그랬다”는 한 중견기업 CEO의 한숨이 아직도 생생하다. 체감할 만한 변화에 사활을 걸어야 한다. 세계 각국은 그렇게 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