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패왕 항우가 상대가 되지 않을 것 같았던 유방에게 패배한 이유로 항우가 포로로 잡은 진나라 군사 20만을 살해한 사건을 든다. 20만이란 숫자가 믿을 수 있는 숫자인지는 의문의 여지가 있지만 대학살을 벌인 것은 틀림없다. 이들은 진나라의 중심인 관중 지방에서 징병한 병사들이었고, 그들의 유가족들은 항우에게 분노했다.
항우뿐 아니라 고대의 전쟁에서 포로 학살은 곧잘 벌어졌다. 그러나 이 시대 사람들도 마음속의 가책은 있었다. 조나라 포로 40만을 학살했던 진나라의 명장 백기는 모함을 받아 죽게 되자 이 학살의 죗값을 받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나라의 명장 이광도 자신의 불운이 과거에 저지른 포로 학살의 대가라고 했다.
이처럼 이성과 양심이 있는 사람들이 왜 이런 몰상식한 일을 저질렀을까? 항우에게 묻는다면 이유가 있었다고 말할 것이다. “20만이나 되는 포로를 먹이고 관리할 수 없다. 그들을 석방하면 다시 적군이 될 수 있다. 우리가 승리하고 전쟁을 빨리 끝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고 말이다. 아마 다른 장수들도 똑같은 대답을 했을 것이다. 누구는 비장하게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내 부하들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 이 책임과 마음의 고통은 나의 평생의 업보로 지고 가겠다.”
전쟁은 비합리가 합리를, 몰상식이 상식을 이기게 만든다. 여기서 이긴다는 말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을 넘어서 그것이 옳은 길이라고 확신하게 만든다는 의미이다. ‘이 포로들을 죽이면 안 된다. 당신이 이 전쟁을 하는 이유가 천하의 주인이 되고자 하는 것이 아닌가? 포로를 죽이면 전투에서 승리해도 천하를 잃게 된다’는 말로 항우를 설득할 수 있었을까? 불가능하다.
미국이 우크라이나군에 집속탄을 제공하기로 했다. 러시아군은 이미 백린탄과 집속탄을 사용하고 있다. 자포리자 원전의 폭파 위협이 시작되고, 핵 위협도 계속되고 있다. 도저히 상식으로는 납득할 수 없는 행위들이지만, 합리와 상식의 계단이 하나하나 점거되고 있다. 이것이 전쟁의 진정한 무서움이다. 이성의 마지노선은 어디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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