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초입, 수도권을 중심으로 난데없는 벌레 떼의 출현으로 사람들이 기겁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소동의 원인은 암수 두 마리가 항시 붙은 상태로 다녀 일명 러브버그(love bug)로 불리는 붉은등우단털파리의 대규모 출현이었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소동’이 반복된 것이다.
붉은등우단털파리는 사람에게 별다른 피해를 주지 않으며, 오히려 쓰레기를 먹어 치우는 등 환경 정화에 도움을 준다. 해충(害蟲)보다는 익충(益蟲)으로 분류되는 곤충이지만, 수많은 벌레 떼의 출현에 겁을 먹거나 불쾌함을 느끼는 이들이 적지 않다. 이들을 방제해 달라는 민원도 쇄도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러브버그의 수명이 며칠에 불과해 거짓말처럼 불편한 상황이 종료된다는 것이다.》
인간의 잣대로 나눈 익충-해충
세상에 대해 아는 것이 늘어날수록 ‘인간이 곧 만물의 척도’라는 오만함에서는 조금씩 벗어나고 있지만, 여전히 우리는 많은 것을 인간의 잣대로만 판단하곤 한다. 먹을 수 있는 식물은 작물이라 부르고 애써 가꾸는 반면, 그 작물의 생장을 방해하는 식물들은 잡초라 부르며 뽑아내길 망설이지 않는다. 어떤 새의 생김새나 울음소리가 보기에 좋다거나 혹은 거슬린다고 하여 길조(吉鳥) 또는 흉조(凶鳥)로 나누어 차별한다. 수많은 동물을 때와 장소, 공교로운 사건들과 맞물려 상서로운 영물과 부정한 동물로 나눠 기꺼워하거나 꺼리며 피한다.
그러니 곤충을 편의에 따라 해충과 익충으로 나눠 대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을 것이다. 고마움보다는 서운함이 오래가고, 은혜보다는 원한을 잊기 어려운 법이니 우리에겐 해충의 기억이 더 강렬하다. 게다가 익충의 도움은 간접적이지만, 해충의 피해는 직접적이다. 흐드러지게 핀 복사꽃 사이를 날아다니는 꿀벌과 달콤한 복숭아 사이의 연관성은 직접적으로 드러나진 않지만, 지금 내 팔뚝에서 모기가 피를 빤 곳이 벌겋게 부어오르며 가려운 것은 너무나도 직관적이기 때문이다. 조선왕조실록에서도 대규모 해충을 의미하는 ‘황충(蝗蟲)’에 대해서는 총 246번이나 언급하면서, 익충에 대한 기록은 거의 찾을 수 없는 건 이 때문일 것이다. 게다가 최근 연구에 의하면 사람에게 발진티푸스를 옮기는 종류의 이(lice)는 무려 8만∼17만 년 전, 그러니 호모 사피엔스가 옷이라고 부를 만한 것을 몸에 걸치던 시절부터 몸에 걸친 털가죽에 숨어서 피를 강탈하고 병을 퍼뜨리는 악당 역할을 해왔다고 한다. 그러니 인류에게 있어 곤충이란 해로운 존재, 적어도 하찮고 귀찮은 것이라는 인식이 강했다. ‘벌레 같다’는 말이 욕설인 이유도 이 때문일 것이다.
지구는 ‘곤충의 행성’
하지만 인간의 눈이 아닌 제3자의 눈으로 바라보면 상황은 반전된다. 많은 생태학자들은 지구를 ‘곤충의 행성’이라 말하길 주저하지 않는다. 그 이유로는 먼저 곤충의 다양성을 들 수 있다. 인간이 발견해 이름을 붙인 생물체들의 목록을 기록하는 생명의 카탈로그(Catalog of Life)에 따르면, 현재까지 알려진 135만여 종의 동물 중에 무려 96만 종이 곤충으로 분류된다. 동물의 70%는 곤충인 셈이다. 생물 진화의 기본 원리가 어떤 환경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도록 다양성을 극대화시키는 것이 기본 패턴임을 감안한다면, 곤충만큼 진화적 대전제에 충실한 생물종도 없을 것이다. 열대에서 극지방까지, 사막에서 갯벌까지, 지하에서 창공에 이르기까지 곤충이 없는 곳은 없다.
게다가 곤충은 가장 오랫동안 이어져 온 생물종이기도 하다. 최초의 곤충이 지상에 등장한 것은 고생대 실루리아기∼오르도비스기다. ‘세상에 나쁜 곤충은 없다’의 저자 안네 스베르드루프튀게손은 이를 일컬어 “곤충은 공룡이 탄생하고 번성하고 멸종하는 전 과정을 지켜본 종이다”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육상동물의 화석이 발견된 시기가 이 즈음인 것을 감안한다면, 곤충은 가장 초기의 육상 이주자 중의 하나 혹은 그 가까운 후손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더욱 놀라운 건, 곤충은 그 긴 세월 동안 몇 번이나 반복되었던 생물 대멸종의 시기를 무사히 견디고 살아남았을 뿐 아니라, 그 개체 수 역시 압도적이라는 사실이다. ‘곤충의 통찰력’을 지은 길버트 월드바우어는 작금의 인류는 예외 없는 인구대폭발의 시기를 지나고 있지만, 여전히 지구상에는 사람 1명당 곤충이 2억 마리의 비율로 존재하며, 지금 지구상에 존재하는 곤충의 수는 바닷가 모래알만큼이나 많다고 말한다. 곤충이야말로, 지구상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끈질기며, 가장 번성한 육상동물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기후 변화로 ‘생태 밸런스’ 위기
하지만 이런 곤충의 생태적 성공은 홀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곤충이 번성한 바탕에는 식물이 있었다. 많은 곤충이 식물과의 공진화를 통해 진화성, 다양성을 키워왔다. 그 결과 현존하는 곤충의 30%는 오로지 식물만 먹는 식물성 곤충이며, 전체 식물 종의 70%를 차지하는 속씨식물 중 열에 아홉이 곤충을 통해서만 꽃가루받이를 할 수 있다. 곤충과 속씨식물이 각각 동물군과 식물군 중에서 가장 번성한 생물종인 것은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또한 다윈이 무려 30cm에 달하는 긴 꿀주머니를 가진 마다가스카르 난초만 보고도, 분명 이 난초에 꼭 맞는 긴 주둥이를 지닌 곤충이 존재할 거라고 확신한 이유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공진화를 해 왔다고 식물과 곤충의 관계가 늘 우호적인 것만은 아니다. 식물은 열매를 맺기 위해 화려한 색과 독특한 향과 달콤한 꿀로 곤충을 유혹하는 동시에, 단단한 껍질과 뾰족한 가시와 유독한 알칼로이드로 이들을 물리친다. 날카로운 턱으로 풀잎을 씹는 곤충이 있는가 하면, 소화액을 분비해 곤충을 잡아먹는 벌레잡이식물도 있다. 그렇게 식물과 곤충은 수억 년 동안 완벽한 승자도 패자도 없는 미묘한 균형을 이루어 왔던 것이다.
이들의 입장에서 보면 인간은 진화의 기나긴 시간 중 아주 최근에 나타난 변수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오랫동안 인간의 역할은 그들 사이의 끈끈한 유대관계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그저 몇몇 육식성 곤충이 인간을 새로운 먹잇감으로 삼고 기생하는 전략을 취했고, 이로 인해 인류는 큰 피해를 본 바 있다. 중세 유럽의 인구를 3분의 1로 줄였던 흑사병은 쥐에게 기생하던 벼룩이 원인이었으며,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피해자를 낸 것으로 알려진 말라리아의 책임은 모기에게 있다.
하지만 인간이 식물과 곤충의 공존 시스템에 끼어들어 미친 영향은 이보다 훨씬 크다. 인류는 농사를 통해 인위적으로 소수의 특정 식물종의 수와 밀도를 기형적으로 증가시켰고, 효과 좋은 살충제의 개발로 인해 곤충을 대량으로 살상하기도 했다. 이 정도로 인해 수억 년 동안 조율해온 관계가 한순간에 무너질 것은 아니었으나, 인류에 의한 대규모 서식지 파괴와 지구온난화로 인한 기후 변화로 식생 분포가 큰 폭으로 변동하면서 오랫동안 안정적으로 유지해 왔던 곤충과 식물의 안정적 균형이 심각하게 깨지고 있다. 생태 시스템의 입장에서 본다면, 인간은 가장 최근에 등장해 수억 년간 이어져 왔던 안정적 균형을 깨뜨린 밸런스 파괴자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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