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까지 경기 부천시에서 제27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BiFan)가 열려 올해도 찾아갔다. 이 영화제는 1997년 처음 개최된 이후 지금까지 유네스코 문학 창의도시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문화축제다. 특히 일본 홋카이도의 유바리(夕張)국제판타스틱영화제와 함께 아시아를 대표하는 ‘판타지’를 주제로 한 장르영화제로 자리 잡고 있다.
나는 첫 개최 이후로 매년 이 영화제를 찾는다. 서울에서 가까운 곳에서 열려 편히 갈 수 있는 것도 그 까닭이지만, 올해처럼 ‘이상해도 괜찮아’를 모토로 하듯 비주류의 감성에 환호하고, 변방에 밀려난 재능을 발견해 영화인뿐 아니라 영화제를 찾아온 관람객들 모두에게 용기를 북돋아주는 영화제이기 때문이다.
이 영화제를 통해 거장 고 오바야시 노부히코(大林宣彦) 감독과 하라다 마사토(原田真人) 감독, 미이케 다카시(三池嵩) 감독, 영화평론가 가케오 요시오(掛尾良夫) 선생, 시오타 도키토시(塩田時敏) 선생을 비롯한 여러 일본의 영화인을 만났고, 모국과 떨어져 있어도 따끈따끈한 일본의 신작 영화들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이런 인연들이 결국 나를 한국 영화로 이끌어 박찬욱 감독의 ‘아가씨’ 등의 작품에 참여하게 했던 것 같다. 올 영화제에 나는 닷새를 서울에서 오가며 모두 열 편 이상의 장편 영화를 관람했다.
“영화를 보는 것은 재미있지만 만드는 것이 더 재미있다.”
관람했던 다양한 영화 중 가장 여운이 남은 작품은 ‘싱글에이트(Single8)’였다. 이 작품은 영화제 경쟁부문인 ‘부천초이스 장편’ 심사위원을 맡은 고나카 가즈야(小中和哉) 감독의 작품이다. 1963년생인 그가 자신의 고교 시절 8mm 필름으로 영화를 촬영하며, 영화를 연출하는 재미에 눈을 뜨게 된 모습을 담은 자전적 작품이다.
1978년 여름, 스타워즈의 흥행에 감명받은 고등학생 히로시가 그의 절친 요시오, 사사키와 힘을 모아 8mm 영화를 만들기로 결심하고, 오랜 짝사랑인 나쓰미를 여주인공으로, 담임선생님과 카메라 가게에서 일하는 대학생 선배의 조언을 받으며 ‘시간 역행’을 주제로 한 SF 영화를 만드는 이야기다.
주인공 히로시는 당연히 감독 자신의 분신이다. 극 중에서 촬영하는 영화 ‘타임리버스’는 감독 자신이 고교 1학년 때 찍은 영화 ‘TURN POINT 10:40’을 재현해, 실제 8mm 필름으로 촬영했는데, 필름으로 촬영함으로써 고졸한 느낌과 고교생들이 시행착오를 거듭하며 작업하는 모습이 절묘한 맛을 자아냈다. 역시 디지털 촬영과는 확연히 다른 무언가를 전달한다.
실은 나도 같은 세대를 살았던 터라 적잖이 공감하며 영화를 볼 수 있었다. 당시 내가 다닌 고등학교에는 영화를 찍는 분위기는 없었지만, 미술부에서 활동하며 친구가 많이 소속한 문예부에 드나들던 생각이 났다. 관람하는 동안 마치 나도 함께 촬영에 참여한 기분까지 들었다.
제목은 감독이 애용했던 후지필름사의 8mm 필름 규격명 ‘Single8’에서 따왔다고 한다. 이는 스티븐 스필버그가 제작하고 J J 에이브럼스가 연출한, ‘E.T.’에 대한 오마주이자 자신의 어린 날에 대한 추억이 담긴 영화 ‘슈퍼에이트(Super8·2011년)’의 제목을 코닥의 8mm 필름 ‘Super8’에서 따온 것에 자극받아 지은 것이라 한다.
고나카 감독은 ‘싱글에이트’가 ‘자신의 원점을 되돌아보게 한 영화’라 했다. 그는 코로나19로 인해 영화 작업은커녕 외출도 하지 못하던 시간 동안 시나리오를 쓰며 지냈다고 한다. 영화 만들기에 열중하던 그 시절의 일을 영화로 만들고 싶다고 오래전부터 생각하고 있었던 것을 실천에 옮긴 것이다. 결국 이 영화를 찍고 나서 자신의 원점으로 돌아갈 수 있었기 때문에, “이제부터가 새로운 시작이라고 느끼며, 앞으로 더 좋은 작품을 찍고 싶다”고 말한다.
상영 후 관객과의 대화, 그리고 마스터 클래스를 마치고 고나카 감독에게 사인과 사진 촬영을 요청하는 젊은이들이 길게 장사진을 이뤘다. 현재와 영화 촬영 방법은 다르지만 나라나 세대를 넘어 젊은이들도 공감할 수 있어서 기쁘게 느껴졌다.
최근 몇 년 사이에 ‘썸머 필름을 타고!’ ‘라스트 필름쇼’ ‘파벨만스’와 같이 영화를 만드는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 늘었다. 현재는 디지털 시대로 필름 시대보다 영화를 만드는 것이 쉽고 가깝게 느껴진다. 나라와 시대를 초월해 영화를 찍는 기쁨을 영화제를 통해, 그리고 영화를 통해 함께 느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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