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학자를 향한 일갈[이준식의 한시 한 수]〈221〉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7월 13일 23시 48분


노나라 땅 노인들 오경(五經)을 논하지만, 백발이 되도록 경전 구절에만 매달린다.
나라 경영의 책략을 물어보면, 안개 속에 빠진 듯 흐리멍덩.
발에는 먼길 오갈 때 신는 무늬 새긴 신발, 머리엔 젠체하기 좋은 네모난 두건.
느릿한 걸음으로 큰길만 다니고, 걷기도 전에 먼지부터 일으킨다.
진시황 때의 승상 이사(李斯)는, 도포 입은 선비를 홀대했었지.
그대들은 시대 변화에 잘 대처한 숙손통(叔孫通)도 아니니, 나와는 아예 가는 길도 다르지.
현실 상황에 통달하지 못할 바에야, 문수 강가로 돌아가 밭갈이나 하시지.
(魯叟談五經, 白髮死章句. 問以經濟策, 茫如墜煙霧. 足著遠遊履, 首戴方山巾. 緩步從直道, 未行先直塵. 秦家丞相府, 不重褒衣人. 君非叔孫通, 與我本殊倫. 時事且未達, 歸耕汶水濱.)

―‘노나라 땅 유학자를 조롱하다(조노유·嘲魯儒)’ 이백(李白·701∼762)







벼슬길에 오르기 전 천하를 주유하던 이백은 전국 시대 노(魯)나라 땅인 산둥 지역에 머문 적이 있다. 현지 유생들을 접하면서 저들의 외골수 처신에 단단히 실망한 모양이다. ‘시경’, ‘예기’ 등 경전에 대해 논의해 보니 죽어라 문구에만 매달릴 뿐 도무지 현실 감각이 없다. 국가 경영의 지혜를 기대할 수 없는 데다 복장이며 행동거지가 허례(虛禮)에 경도되어 있다. 점잔 빼느라 느릿느릿 걸으며 긴 도포 자락으로 먼지부터 잔뜩 일으킨다. 이런 유생들을 진시황은 철저히 배제했고 저들이 금과옥조로 여기던 경전마저 불사르라 했다. 후일 한 고조 유방(劉邦)은 개혁적 성향을 띤 유학자 숙손통(叔孫通)을 중용했다. 숙손의 처세에 공감했던 이백, ‘백발이 되도록 경전 구절에만 매달리는’ 유생들을 향해 ‘문수 강가로 돌아가 밭갈이나 하시라’고 일갈한 건 당연한 귀결이었다.

#유학자를 향한 일갈#노나라 땅 유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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