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은 2009년 8월에 시작됐다. 부산의 한 아파트 인근에 70층이 넘는 아파트가 올라가자 주민 140여 명이 소장을 냈다. 처음에는 흔한 일조권, 조망권 소송이었다. 1심에서 원고들은 전부 패소했다. 그러자 2심에서는 해질 무렵이면 이웃 아파트 외벽 유리가 마치 거울처럼 강한 햇빛을 반사시켜 피해를 준다는 주장을 추가했다. 2심에서 원고들이 일부 승소해 사건은 대법원으로 갔다. 가까운 건물 사이의 ‘태양반사광’ 피해에 관한 첫 대법원 판례가 나오게 된 과정이다.
대법원 판결은 2021년 3월에 나왔다. 소송의 시작에서 끝까지 장장 11년 7개월이 걸린 것이다. 1심과 2심에서 거듭 감정(鑑定)을 거치느라 도합 4년이 걸린 것은 그럭저럭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대법원에서 무려 7년 7개월이 걸렸다. 이 사건의 대법원 사건번호는 ‘2013다’로 시작한다. 사건이 대법원에 올라온 해가 2013년이라는 뜻이다. 그 사이 많은 일이 있었다. 피고 건설회사는 회사를 쪼개 지주회사를 만들었다. 피고 회사를 대리하던 로펌의 담당 변호사 중 한 명은 경력직 판사가 되는 데 필요한 햇수를 채우고 법관이 됐다.
물론 모든 대법원 사건이 이렇지는 않다. 대법원은 ‘심리불속행기각’이라 하여 상고심에 올라오는 민사 사건 넷 중 셋은 실질적인 판결을 하지 않고 4개월 이내에 상고를 기각한다. 그럼에도 이런 장기미제 사건들은 쌓인다.
‘태양반사광 사건’은 상고심의 현주소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예다. 이 사건은 대법원에서의 7년 7개월 동안 전원합의체로 넘어간 적도, 공개변론이 열린 적도 없었다. 결론도 2심과 같았다. 아무리 국내 최초 판례라지만 7년 넘게 걸릴 일은 아니었다. 더 큰 문제는 사건 당사자들이 왜 이렇게 오래 걸리는지, 언제 끝날지 누구도 알 수 없었다는 점이다. 상고심에 올라간 지 만 6년이 되자 참다 못해 변호사와 별개로 대법원에 ‘사건 처리 결과 문의’라는 것을 제출한 원고도 있었다.
지금 대법원에는 이 ‘태양반사광 사건’의 기록에 도전 중인 또 다른 사건이 있다. 바로 ‘제국의 위안부’ 저자 박유하 교수를 피고인으로 하는 명예훼손 형사 사건이다. 그의 유무죄를 논할 생각은 없다. 다만 이 사건이 대법원에 올라간 지 5년 8개월이나 지났음을 환기하고 싶다. 1심 무죄, 2심 유죄로 판단이 엇갈린 사건이기는 하다. 사안의 민감성도 안다. 그래도 상고심 5년 8개월은 해도 너무했다. 1년만 더 가면 임진왜란보다도 길어진다. 피고인이 무죄라면 하루빨리 파기환송해서 다시 판결받게 할 일이고, 유죄라도 벌금 1000만 원을 선고받은 피고인에게 6년 가까이 대법원 판결을 기다리게 하는 ‘희망고문’이야말로 가혹한 ‘형벌’ 아니겠는가.
두 달 남짓 지나면 새 대법원장 임기가 시작된다. 이런 상고심의 현주소를 직시하고 상고심 제도를 개혁하는 것이야말로 다음 대법원장의 과제가 아닐 수 없다.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는 보수나 진보의 문제가 아니다. 상고심 개혁에 관한 대안이 준비된 차기 대법원장과 그 대안을 입법으로 뒷받침하는 차기 국회의 협력이 절실하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