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반려동물보험(펫보험) 치료비 지급을 검토하던 보험사 직원 A 씨는 가입자에게 해당 반려견이 보험에 가입된 반려견이 맞는지를 확인해 달라고 요청했다. 가입자가 피해 사실을 증빙하기 위해 보낸 사진 속 반려견의 모습이 가입 당시와 너무나도 달랐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입자로부턴 “증빙할 방법을 모르겠다”는 답만 되돌아왔다. 가입자는 “같은 개가 맞는데 왜 치료비를 안 주냐”며 약 300만 원의 치료비를 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과거 동물병원 진료 기록 등을 보면 같은 개가 맞는지 확인할 수도 있을 것 같았지만 기록이 제대로 남아 있지 않아 그마저도 쉽지 않았다. A 씨는 “반려견 한 마리만 펫보험에 가입한 뒤 그걸로 여러 마리의 치료비를 타내거나 견종이나 나이를 실제와 다르게 적어 가입하는 등의 사례가 종종 있는데 확인이 어렵다”고 했다.》
정부는 4일 발표한 ‘하반기 경제정책방향’에서 반려동물 산업 활성화 정책의 일환으로 펫보험 제도를 정비하고 관련 시장을 키우겠다는 방침을 내놨다. 하지만 보험업계에선 단기간에 펫보험 시장을 성장시키긴 쉽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보험사들은 2007년부터 펫보험 상품을 출시했지만 손해율이 100%를 넘어서면서 2010년부터 2년여 동안 판매를 중단한 바 있다. 당시 보험 가입자와 보험회사, 동물병원 간에 정보 공유가 원활하지 않은 점, 동물병원 진료 체계가 표준화되지 않은 점 등이 문제로 지적됐다. 이 같은 문제들은 10여 년이 지난 지금도 해결되지 않았다는 게 보험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 0.9%에 그치는 펫보험 가입률
손해보험협회 등에 따르면 지난해 말 펫보험 가입 건수는 7만1896건이다. 2018년(7005건)보다 10배 이상으로 늘어난 규모다. 가입자가 낸 보험료 총액은 287억5000만 원으로 25배 이상으로 불었다. 그러나 가파른 성장세에 비해 가입률은 아직 미미한 수준이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전체 반려동물 개체 수는 799만 마리로 추정된다. 펫보험 가입률은 아직 0.9%에 그치는 것이다.
비싼 동물병원 진료비를 감안했을 때 펫보험 지원 한도가 작다는 점이 가입률이 저조한 이유 중 하나로 꼽힌다. 반려견 2마리를 키우는 직장인 이모 씨(27)는 “동물병원에서 엑스레이 촬영만 해도 30만 원이 들고, 간단한 수술이라도 하게 되면 수백만 원이 필요한데 1년에 500만 원은 보장 한도가 작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현재 출시된 펫보험들은 대체로 1년 500만 원 한도로 의료비 등을 지원하고 있다.
보험사들은 현재 체계에선 정확한 보상 심사가 어려워 지원 한도를 늘리기 어렵다고 설명한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현재는 반려동물이 실제 보험에 가입된 동물인지 가려내기가 어려워 심사가 제대로 되지 않고 보험사들도 보상 폭이 큰 상품을 선뜻 출시하지 못하고 있다”며 “보상 폭이 작으니 가입자가 늘지 않고, 가입자가 적으니 새로운 상품을 출시하기 어려운 악순환이 발생하고 있다”고 말했다. 반려동물 등록제가 더욱 활성화되는 게 필요하다는 것이다. 마이크로칩 등으로 반려동물 고유번호를 등록하는 반려동물 등록제는 2008년 시범 도입 후 2014년부터 의무화됐다. 하지만 2021년 기준으로 등록률은 54%로 여전히 절반을 조금 넘는 수준이다.
● 진료기록부 발급, “수가 산정 위해 필요” vs “임의 진료 가능성”
펫보험이 활성화되기 위해선 진료기록부 발급 의무화도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행 수의사법에 따르면 수의사는 동물 진료 후 진료기록부를 발급할 의무가 없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수의사가 진료기록부를 내주지 않아 가입자가 동물병원에서 결제한 카드 영수증을 보험사에 보내기도 한다”며 “진료 내용 없이 금액만 적힌 영수증을 가지고는 손해사정이 어려워 적정 보험금을 지급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그러나 수의사 측은 진료기록부 발급을 위해서는 제도 정비가 먼저 이뤄져야 한다는 입장이다. 대한수의사회 관계자는 “동물 진료는 처방전 없이도 구할 수 있는 의약품이 대부분이라 진료기록부를 발급하게 되면 이를 가지고 보호자가 의약품을 산 뒤 마음대로 약을 먹이거나 해 더 큰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며 “동물 의약품에 대해서도 관리를 강화하는 등 제도가 먼저 정비될 필요가 있다”고 했다.
현재 동물병원 진료기록부 발급을 의무화하는 내용의 수의사법 개정안 4건이 국회에 계류 중이다. 보험업계는 법안이 통과되면 과잉 진료와 보험사기를 막고 합리적인 손해사정이 가능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한 보험사 관계자는 “현재는 펫보험 상품을 설계할 때 일본 등 해외 국가의 데이터를 사 와서 만들고 있다”며 “이러한 비용이 보험 가입비에 반영되는 경향이 있는데, 국내 데이터가 만들어진다면 가입비를 낮추면서 국내 현실에 맞는 보험 설계가 가능할 것”이라고 했다.
● 정부, 진료비 표준화 작업 개시
같은 질병에 대해 동물병원마다 진단명과 진료 항목이 달라 진료비 차이가 큰 점도 넘어야 할 산이다. 손해보험협회 관계자는 “현재는 진료 항목이 불투명해 요율 산정 시 해당 진료가 입원 치료인지 통원 치료인지조차 제대로 구분되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반려동물 진료비에 대한 기준이 없다 보니 병원마다 가격이 제각각이고 관련 통계도 부족하다.
정부는 현재 진단명 및 진료 행위 표준화를 위한 사전작업으로 전국에서 2명 이상의 수의사가 운영하고 있는 동물병원의 진료비를 전수 조사하고 있다. 조사 결과는 이르면 이달 중 발표될 예정이다. 농식품부 반려산업동물의료팀 관계자는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진료비를 표준화하는 작업이 진행되면 진료비를 합리적으로 비교할 수 있는 기준이 만들어질 것”이라고 했다.
수의사 측은 진료비 표준화에 난색을 표하고 있다. 대한수의사회 관계자는 “유럽이나 미국 등 동물보험이 활성화한 나라의 사례를 봐도 진료비를 통일하는 나라는 없다”며 “진료 품질에 따라 진료비 차이가 발생할 수 있는데, 이를 간과하고 진료비를 표준화하면 고급 진료를 하려는 병원이 없어져 전반적인 동물의료의 질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했다.
정부는 진료비 표준화가 특정 진단명마다 진료비를 모두 동일하게 맞추는 방식은 아니라고 설명한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예컨대 중성화 수술 과정이 A, B, C 단계로 이뤄진다고 하면 각각의 과정에 대해 진료비 책정 근거를 마련하는 셈”이라며 “중성화 수술을 A, B 단계까지만 실시한 병원에 비해 A, B, C 단계를 모두 실시한 병원은 더 높은 진료비를 책정할 수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펫보험 가입률이 40%에 달할 정도로 세계에서 펫보험이 가장 활성화된 스웨덴의 경우 1900년대 초부터 관련 보험이 시작됐다. 보험 전문가들은 펫보험 산업은 무리하게 속도를 내기보단 충분한 시간을 갖고 관련 제도를 정비해 나가는 게 바람직하다고 조언한다. 제도 정비 없이 섣불리 시장 확대에 나설 경우 보험사 손해율 상승으로 판매가 중단되는 사례가 반복될 수 있다는 것이다.
김경선 보험연구원 건강보장연구센터 센터장은 ‘반려동물보험 시장의 현황과 과제’ 보고서에서 “과거 판매 중단 사례로부터 알 수 있듯이 펫보험은 (보험사, 수의사 등) 이해관계자 간 정보 비대칭 해소와 손해율 관리를 위한 제도적 기반이 중요하다”며 “진료체계 표준화, 진료기록부 발급 의무화를 통해 진료 기록 관리를 강화할 필요가 있으며 나아가 표준수가제 도입 가능성도 검토할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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