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칼럼/김기용]개방한다면서 ‘죽의 장막’ 다시 치는 중국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7월 16일 23시 57분


해외서 反中시위 참여 독일인 입국 과정서 구금
‘반간첩법’ 등 통제 강화로 외국인까지 옥죄려 해

김기용 베이징 특파원
김기용 베이징 특파원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이 한국에서 열린 반중(反中)시위에 참여한 경험이 있다고 해보자. 좀 더 구체적으로 중국 신장위구르 지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중국 정부의 소수민족 인권 탄압을 비판하는 시위에 참여했다고 가정해 보자. 당신이 서너 달쯤 뒤 중국 여행을 가게 된다면 도착한 공항에서 체포될 수 있다. 중국 공안은 시위에 참여한 당신 사진을 증거라며 들이댈 수도 있다. 공안은 함께 시위에 참여한 다른 사람들의 신상 정보를 내놓으라고 당신을 압박할 수도 있다. 당신은 곧바로 한국으로 쫓겨날지도 모른다. 한국에 돌아와서도 중국 공안의 불법적인 정보 요구는 계속될 수 있다.

가정형으로 서술했지만 모두 ‘완료형’ 사실이다. 최근 중국계 독일인 ‘알렉스’(가명)가 겪은 일이다.

독일 비영리 탐사보도 매체 코렉티프는 8일 알렉스가 지난달 말 중국에 갔다가 공항에서 체포됐다고 보도했다. 알렉스는 조사를 받고 하루 만에 독일로 추방됐다. 이 사실은 중앙통신사, 쯔유(自由)시보를 비롯한 대만 언론에도 보도됐지만 중국 매체에는 전혀 실리지 않았다.

알렉스는 중국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별도 조사실로 불려 갔다. 조사관은 그에게 “(독일에서) 반중 시위에 참여했느냐”고 다그쳤다. 알렉스는 처음에는 부인했다. 하지만 조사관이 시위에 참여한 그의 사진을 꺼내 놓자 시인할 수밖에 없었다. 조사관은 알렉스에게 “누가 시위를 조직했는가” “어떤 사람들이 시위에 참가했는가” “시위대는 누가 움직이는가” 등 시위 내용과 배후에 대해 캐물었다.

같은 질문들이 몇 시간 동안 반복되자 두려워진 알렉스는 시위에 참여한 다른 두 명의 이름을 댔다. 소속과 신체적 특징도 말했다. 알렉스는 다음 날 독일로 추방됐다. 하지만 당시 조사관은 독일에 있는 알렉스에게 지속적으로 연락해 추가 정보 등을 요구했다.

이 사건에는 무서운 대목이 곳곳에 있다. 중국 공안은 독일에서 벌어진 시위 사진을 어떻게 확보했을까. 누구에게 찍으라고 했을까. 그리고 왜 가지고 있었을까. 사진 속 수많은 시위 참가자 가운데 알렉스를 어떻게 가려냈을까. 시위 참가자 신상정보를 확보해 무엇에 쓰려고 했을까. 해외에서 외국인이 중국을 비판하면 중국에 입국할 수 없다는 것인가. 이는 한국인에게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는 중대한 사안이다.

독일 보안 당국은 중국 공안이 독일 시민에게 강제로 정보 제공 압력을 가한 사실이 확인될 경우 심각한 외교 문제가 발생할 것이라며 조사에 착수했다. 일부 독일 의원은 중국 여행 경보 발령을 정부에 요청했다. 독일 외교부는 중국이 외국 국적을 취득한 중국인을 상대할 때 국제법에 따른 의무를 소홀히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최근 중국은 ‘반간첩법’ 등을 제정해 사회 분위기를 폐쇄적으로 옥죄고 있다. 중국에서는 이제 시위 현장을 지나다 우연히 사진을 찍어도 간첩으로 몰릴 수 있다. 중국에서 인터넷으로 ‘티베트’나 ‘인권’ 같은 민감한 단어를 검색해도 위험하다. 간첩은 아니지만 외국과 협력하는 많은 중국인은 물론 중국을 방문한 외국인들마저 두려워하며 행동을 스스로 검열하고 있다.

중국 지도자들은 틈만 나면 개방을 강조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죽(竹)의 장막’이 갈수록 견고해지고 더 무서워지고 있다. 그 장막에 갇혀 신음했던 과거를 중국은 개혁개방 40년이 지나면서 점점 잊어가고 있다.

#중국#죽의 장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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