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일동포 작가 양석일이 1981년에 쓴 자전적 소설을 희곡 작가인 정의신과 영화감독 최양일이 각색해서 영화로 만들었다. 셋 다 재일동포 2세인 만큼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일본에서 태어난 2세들의 애환이 담겼지만 무턱대고 슬프거나 안타깝지는 않다. 태생적으로 차별받는 조선인과, 조선인을 무시하면서도 더 가난한 일본인 그리고 불법체류자인 외국인 노동자들이 얽히고설키어 서로를 무시하다가도 어떤 때는 같은 편이 되고 그러다가 뒤통수를 치고, 결국은 그토록 경멸하던 상대로부터 위로를 받는다. 등장인물 모두 사회의 주류에 끼지 못한 남루한 인생이지만 일상의 작은 틈에서 재미와 따뜻함이 새어 나온다.
주인공 충남은 고등학교 동창이 사장인 택시 회사에서 일한다. 충남의 가족과 친구들은 모두 조선인총연합회(조총련)가 설립한 조선학교 출신이다. 사장은 일본인이 무시하지 못할 정도로 돈을 버는 게 꿈이지만, 충남은 그저 오늘 하루를 살아내는 것에 만족한다. 모친은 술집을 운영하며 부자가 되었지만 장남과 차남을 북한에 보낸 처지라 하나 남은 아들이 하루살이처럼 사는 게 못마땅하다. 재일동포는 열심히 일해 봤자 택시 회사나 파친코, 불고깃집 사장이 될 뿐이라 충남에겐 애초부터 장래 희망 같은 것은 없다.
조총련에 대립하는 또 하나의 집단은 한국 국적으로 이루어진 대한민국 민단이다. 조총련이나 민단이나 남한에서 건너온 동포인데도 조선과 한국 국적으로 나뉘어 일본인보다도 서로를 견제한다. 게다가 충남의 일본인 동료는 조선인이 싫다면서 충남을 제일 의지한다. “조선인은 싫지만 충남은 좋아. 충남은 왜 하필 조선인이야?”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그는 조선인이라는 이유만으로 통째로 경멸했던 자신의 편협함을 인정하기 싫어한다. 충남의 모친은 조선인을 차별하는 일본을 욕하면서도 자신이 부리는 외국인 노동자들을 업신여긴다. 충남은 모친의 술집에서 일하는 필리핀 아가씨와 살림을 차린다.
달은 밤하늘을 꿋꿋이 지키지만 별처럼 친절하게 길을 안내하진 않는다. 대신, 모두에게 달빛을 공평하게 나눠주며, 편 가르고 반목하는 우리를 조용히 타이른다. 달이 어느 쪽에 떠 있는지 찾다 보면 우리 모두가 같은 하늘 아래에 있다는 걸 알 거라고. 재일동포들도 이제는 4세들이 주류가 되었고, 많은 이들이 국적을 대한민국으로 바꾸거나 일본을 택했다. 이 땅에 사는 우리들은 ‘반일’이란 단어에 쉽게 휘둘린다. 그러면서도 일본 제품을 선호하고 일본 음식을 즐기고 일본 여행을 간다. 습관처럼 내뱉는 반일의 본질은 무엇일까? 우리가 깊은 고민 없이 반일을 외칠 때 일본에서 대를 이어 살고 있는 동포들의 생각은 어떨지 궁금하면서도 미안하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