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칼럼/이상훈]日 ‘오염수 소통’ 더 극진해야 한다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7월 18일 23시 42분


“원전 사고 사과” 메시지 한국인에게 와닿지 않아
과학 근거만으로는 불충분… 진솔한 이해 구해야

이상훈 도쿄 특파원
이상훈 도쿄 특파원
일본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에서 남쪽으로 10km가량 가면 북유럽 분위기를 풍기는 세모 지붕 3층 건물이 있다. 원전 운영사 도쿄전력 폐로(閉爐) 자료관이다. 2011년 동일본대지진 전까지는 원전 홍보관이었지만 지금은 당시 원전 폭발 사고 참상과 폐로 작업을 알리고 있다. 도쿄전력 측은 “다시는 이런 사고가 일어나지 않도록 반성과 교훈을 전하는 것이 책임”이라고 밝히고 있다. 자료관에서는 ‘큰 사고를 일으켜 막대한 피해와 불편을 끼쳐 진심으로 사죄드린다’는 내용의 영상이 흐른다. 한국어판도 있다. 도쿄전력 사장이 무릎 꿇고 사죄한 건 알고 있었지만 막상 눈앞에서 사과를 접하는 기분은 묘했다.

후쿠시마는 사고 상처와 재건 노력이 교차하는 곳이다. 집권 자민당은 선거 때마다 총리 첫 유세를 후쿠시마에서 시작한다. 공영방송 NHK는 수시로 후쿠시마 재건을 다루는 프로그램을 방영하고 여러 대형마트에서는 잊을 만하면 후쿠시마 농수산물 판촉 행사를 연다. 후쿠시마 복구를 맡는 일본 부흥청의 올 예산만 5523억 엔(약 5조 원)이다. 지진해일로 유실된 철도와 원전 인근 어항(漁港)은 복구를 마쳤다. 철도 여행객은 드물고 항구는 텅 비었지만 애초 경제성을 따진 사업이 아니었다.

일본에서 오염수 방류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강하지 않은 이유는 여기에 있다. 10년 넘게 부흥에 땀 흘리는 후쿠시마에 ‘오염수’ 딱지를 붙이지 않으려는 정서가 크다. 근거 없는 소문으로 인한 피해를 우려하는 현지 어민은 반대하지만 일본 국민은 꺼림칙해도 후쿠시마에 민폐가 될까 방류 반대 의견을 드러내놓고 말하길 꺼린다. 다만 이건 일본 얘기다.

한국 국민은 후쿠시마 상황이 어떤지, 도쿄전력이 한국에 사과했는지 잘 모른다. 일본을 싫어해서가 아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에 대해 일본이 한국과 소통을 제대로 진지하게 하지 않아서다.

후쿠시마 사고와 오염수에 대한 일본 측 설명은 주한 일본대사관이나 도쿄전력 홈페이지에 가야 겨우 찾아볼 수 있다. 도쿄전력 웹사이트에는 “전국, 세계 분들의 불신, 불안을 초래한 것을 깊이 반성한다”는 일본어 한 문장이 총 630자 분량의 사고 설명에 들어 있다. 기록으로서 의미는 있겠지만 이웃 나라 사람 마음을 사기에는 부족하다. 일본대사관 ‘동일본 재건’ 사이트에는 “외국 분들이 떠올리는 이미지는 아직도 원전 사고의 부정적 요소가 많아 재건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쓰여 있다. 후쿠시마 재건이 늦어지는 게 한국 탓이라는 뜻일까.

일본에서도 과학적 근거나 국제 기준만으로 오염수 방류를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겠다는 분위기가 없지 않다. 오염수 담당 장관이 어민 대표를 수시로 만나 고개 숙이고 언론이 여론 향방에 주목하는 이유다. 오염수 방류를 위한 법적 절차는 진작에 끝났지만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총리는 직접 어민을 만나 설명한다고 한다. 국제원자력기구(IAEA) 보고서를 왜 못 믿느냐고 윽박지르는 모습은 찾기 어렵다.

일본 정부는 오염수에 대한 한국인의 불안과 부정적 이미지에 민감하다고 한다. IAEA 검증에 한국을 적극 참여시키고 한국 정부 시찰단을 받아들인 까닭이다. 그렇다고 사고를 일으킨 일본의 설명 책임이 면제되는 건 아니다. 일본 정부는 자국민에게 기울이는 노력 일부만큼이라도 들여서 한국 국민에게 정중하고 진지하게 이해를 구할 필요가 있다. 이는 야당과 일부 국민의 거센 비난에도 ‘반일(反日)’이라는 만능 치트키(해결책)로 일본에 화살을 돌리지 않는 한국 정부에 대한 성의이기도 하다.

#오염수#과학 근거#불충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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