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 관리에 또다시 비상등이 켜졌다. 유례없는 극한 호우로 농산물 가격이 폭등하고 있는 데다 유럽 최대 곡창지대인 우크라이나의 곡물 수출이 중단될 위기에 처하면서 글로벌 애그플레이션 쓰나미가 몰려오고 있기 때문이다. 치솟는 밥상 물가가 서서히 잡혀가던 인플레이션 불씨를 되살릴 수 있다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지난주 폭우로 피해를 입은 농지는 2만7000ha로 서울 여의도 면적의 93배가 넘는다. 이미 무더위로 들썩이던 농산물 가격은 이 여파로 수직 상승했다. 어제 도매가 기준으로 시금치는 일주일 새 51%, 한 달 새 219% 폭등했고 상추(195%) 얼갈이배추(113%) 등도 한 달 전보다 100% 넘게 뛰었다. 아직 집계가 안 된 산지가 많고 이번 주에도 집중호우가 계속되고 있어 농경지 침수에 따른 농산물 가격 급등세는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뿐만 아니라 폭염과 가뭄 등 이상기후가 세계 곳곳을 덮치면서 국제 곡물 가격도 뛰고 있다. 지난달 국제 설탕 가격은 사탕수수 최대 산지인 인도와 브라질의 가뭄으로 12년 만에 가장 높았고, 카카오 원두 가격은 아프리카 폭우로 46년 만에 최고치를 경신했다. 여기에다 러시아가 전쟁 중에도 우크라이나의 곡물 수출을 가능하게 했던 ‘흑해곡물수출협정’을 종료하겠다고 17일 선언했다. 우크라이나는 세계 옥수수 수출의 12%, 밀 수출의 9% 등을 차지하고 있어 수출길이 다시 막히면 전쟁 발발 직후 경험했던 전 세계적 식량 가격 폭등이 재연될 수 있다.
신선식품과 수입 곡물가의 동반 상승은 가공식품과 외식 물가는 물론이고 생활물가 전반의 상승을 부채질하는 요인이 된다. 이로 인해 진정 기미를 보이던 소비자물가가 다시 상승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농산물·석유류를 뺀 근원물가 상승률은 3.5%로 여전히 높고, 다음 달부터 순차적으로 서울 버스와 지하철 요금이 오르는 등 물가 상승 압력은 지속되고 있다.
가계가 느끼는 체감물가는 여전히 높은데 밥상 물가 공포까지 더해지면 소비심리가 위축되고 경기 회복이 더 멀어지는 악순환에 빠질 수 있다. 밥상 물가 불안을 서둘러 잡아야 하는 이유다. 정부는 농축수산물 비축 물량을 방출해 수급 안정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 물가 안정에 찬물을 끼얹는 담합이나 편법 가격 인상 등에도 적극 대응할 필요가 있다. 만성화하는 글로벌 애그플레이션과 기후 변화에 맞춰 농산물 비축 제도를 다양화하는 방안도 검토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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