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속의 한식’이 최근 예능 트렌드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서진이네’ ‘한국인의 식판’ ‘장사천재 백사장’ 같은 프로그램은 외국 각지에 나가 한식을 선보이며 한식이 외국에서 어떻게 수용될 수 있을지 보여준다. 여행에서 음식은 중요한 요소다. 새로운 문화와 생활을 체험할 수 있는 매개이자 ‘먹는다’는 행위의 보편성을 활용할 수 있는 친근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2000년대 들어 음식이 여행의 주된 목적이 되는 ‘음식 관광’이 점차 늘어나기 시작한 이유다.
현대 관광 산업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경험의 관점에서 보면 음식 관광에는 흥미로운 지점이 있다. 우선 경험 차원에서 다양한 의미를 넘나든다는 점에서 그렇다. 켄터키대 연구진은 음식 경험을 두 가지 축에 의해 네 가지 영역으로 나눴다. 가로축의 기준으로 개인에게 어떤 음식은 ‘먹을 수 있는/맛있는’ 것이거나 ‘먹을 수 없는/맛없는’ 것이 된다. 세로축을 기준으로 하면 어떤 음식은 개인에게 ‘이국적인’ 것이거나 ‘친숙한’ 무언가로 나뉠 수 있다. 다만 이 기준에 따른 분류는 고정된 것이 아니다. 처음 맛본 음식이 생소하고 맛이 없더라도 반복적인 경험을 통해 친근하면서도 맛있는 음식으로 바뀔 수 있다. 음식을 통한 경험이 유동적인 성격을 갖는다는 의미다.
경험경제 관점에서도 음식 관광은 가치를 지닌다. 경험이 의미를 가지려면 몇 가지 요소를 충족해야 하는데 우선 감각에 대한 고도의 집중을 통해 어떤 식으로든 감정이 움직여야 한다. 놀이처럼 즐거워야 하며 상황이 충분히 통제되고 있다는 인상을 줘야 한다. 음식 관광은 음식을 통해 미각, 후각, 시각 등 다양한 감각을 총체적으로 동원해 경험에 대한 열망을 부추긴다는 점에서 경험경제의 조건에 딱 들어맞는다.
개인적으로 참여한 음식 관광을 반추해봐도 음식 관광을 경험경제 측면에서 해석할 수 있다. 2015년 스페인 빌바오에서 자전거 음식 관광 프로그램에 참여한 적이 있다. 이 프로그램은 건축물과 음식 문화 간의 조화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구겐하임미술관뿐 아니라 복합 문화 공간 아스쿠나센터, 에우스칼두나 국제회의장 겸 음악당 등 러스트벨트(쇠락한 공업지대)였던 빌바오를 흥미로운 건축 도시로 만든 건축물을 관람하면서 골목 곳곳에 숨은 맛집을 찾아다니는 프로그램이었다. 자전거로 4시간 남짓 도시를 구경하는 동안 눈과 입을 가득 채우며 도시의 정취에 흠뻑 빠질 수 있었다. 도시를 살펴보는 맥락에서 자연스럽게 다양한 음식에 도전해볼 수 있었고 처음에는 낯설었던 지역 음식들이 프로그램 이후엔 익숙하고 맛있는 음식이 됐다.
여행 앱 트립어드바이저나 숙박 앱 에어비앤비에도 외국인 여행자를 대상으로 한국인들의 일상을 엿볼 수 있는 음식 관광 프로그램들이 눈에 띄게 늘기 시작했다. 광장시장, 노량진 수산시장, 동대문시장 등 서울의 대표적인 시장을 둘러보며 음식을 맛보거나 호떡이나 떡볶이 같은 길거리 음식을 선보이는 프로그램들이 인기다. 한옥에서 막걸리 등 전통 술을 시음하며 만드는 과정을 보여주는 프로그램도 반응이 좋다. 대부분 서울에 집중돼 있지만 전주나 부산 등 서울과는 다른 매력을 선보이는 도시에서도 지역만의 개성을 내세운 프로그램이 점차 나타나고 있다. 지역 고유의 문화를 자연스러운 맥락에서 접하고 싶어 하는 수요가 꾸준히 늘고 있다는 증거다.
음식은 가장 개인적인 경험의 산물이면서도 매우 사회적이고 문화적인 경험의 산물이기도 하다. 음식은 먹는다는 가장 보편적인 경험을 전제하면서도 지역별, 문화별로 다른 특성을 지니는 특수성을 띠기도 한다. 이처럼 양가적이고 유동적인 음식의 경험적 특성은 경험경제 관점에서 음식 관광이 내포하는 가능성을 키운다. 혀끝에서 시작된 작은 경험을 전방위적인 차원으로 확장한다면 음식은 얼마든지 관광의 모든 요소를 포섭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 글은 DBR(동아비즈니스리뷰) 372호에 실린 ‘혀끝 넘어 경험 경제 구축하는 ‘푸드 투어’’를 요약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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