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마득히 먼 쓸쓸한 산길, 콸콸 흐르는 차가운 산골짝 개울. 재잘재잘 언제나 새들이 머물고, 적적하게 인적이 끊긴 곳. 쏴 쏴 바람이 얼굴을 스치고, 펄펄 눈송이 내 몸에 쌓인다. 아침마다 해는 보이지 않고, 해마다 봄조차 알지 못한다. (杳杳寒山道, 落落冷澗濱. 啾啾常有鳥, 寂寂更無人. 淅淅風吹面, 紛紛雪積身. 朝朝不見日, 歲歲不知春.)
―‘쓸쓸한 산길(한산도·寒山道)’ 한산(寒山·당대 초엽)
인간 세상과 단절한 채 수행에 정진하는 선사(禪師), 그 곁을 수반하는 건 개울물과 산새와 바람과 눈발이 전부다. 선사의 이름은 한산(寒山), 혹은 한산자(寒山子). 불교 성지의 하나인 천태산(天台山) 속 한암(寒巖)이라는 바위 동굴에서 기거한 데서 유래한 법명(法名)이다. 선사는 인위적 치장을 마다하기에 바람이 얼굴을 스치고, 눈발이 몸에 쌓이는 것조차 감내한다. 또 속세 인연과의 철저한 격절(隔絶)이 가능했기에 ‘아침마다 해가 보이지 않고, 해마다 봄조차 알지 못하는’ 은둔의 삶을 즐길 수 있다.
시는 외견상 5언 율시의 형식을 취했지만 율시의 전통적 작법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 소리와 형상을 도드라지게 하려고 모든 시구에 의성어, 의태어를 빠짐없이 사용했는데 시각적, 청각적 효과가 최대화되는 파격적인 시도다. 이는 민가에서 흔히 쓰는 기법인데 사대부 문학의 울타리에 갇히길 거부했던 시인의 취향에 부합했을 것이다. 또 시 전체에 의미상 서로 대칭을 이루는 대구(對句)를 배치한 것도 이 시의 숨은 매력이다. 이 대구를 통해 시인은 의미적 리듬감을 한껏 살리고 싶었을 것이다. 이러저러한 파격 때문에 자신의 시가 비판받는 걸 의식해서였을까. 시인은 ‘언젠가 안목 있는 사람을 만난다면, (내 시가) 저절로 온 천하에 퍼지리라’는 시구를 남기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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