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충북 청주시 오송읍 지하차도 참사 발생 직후 충북도는 “매뉴얼상 지하차도 중심에 물이 50cm 이상 차올라야 교통 통제를 하는데 제방 붕괴 전 그런 징후가 없었다”고 해명했다. 제방이 무너지고 순식간에 강물이 밀려들면서 미처 통행을 제한할 수 없었단 취지였다.
나중에야 50cm 침수 규정이 통제 요건 5개 중 1개일 뿐이며 다른 요건 일부를 충족해도 교통 통제가 가능하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하지만 필자에겐 충북도의 해명에 포함된 50cm라는 수치가 공직사회의 적당주의를 여실히 보여준다는 생각이 들었다.
첫째, 충북도는 논란이 되자 “승용차 타이어 반 바퀴인 50cm를 교통 통제 기준으로 정했다. 그 이상이면 차량 운행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 설명은 엉터리였다.
국내 승용차 타이어의 최대 지름(외경)은 60∼70cm이고, 그 절반은 30∼35cm다. 또 행정안전부 재난안전관리본부는 타이어 ‘절반’이 아니라 ‘3분의 2 이상’ 물이 차면 엔진룸으로 물이 들어가기 때문에 운전이 어렵다고 설명하고 있다. 충북도 기준대로 50cm 침수될 경우 이미 승용차 대부분 엔진룸에 물이 들어간 다음이라 대피할 수 없다는 뜻이다. 필자와 통화한 35년 경력의 재난 전문가도 “옆 차를 보고 타이어 절반(30∼35cm)이 잠기면 대피 준비를 하고, 3분의 2(40∼46cm)가 잠기면 차를 버리고 나와야 한다”고 했다.
둘째, 수심이 50cm인 경우 이미 지하차도로 진입한 자동차 운전자들이 차를 버리고 대피하기 어렵다. 재난안전관리본부에 따르면 성인 기준으로 남성은 수심 70cm, 여성은 50cm, 그리고 초등학교 5∼6학년은 20cm 이상이면 보행이 곤란하다. 이 때문에 수심이 20cm 이하일 때 대피를 권고한다. 이번처럼 경사진 지하차도 위에서 대량의 물이 세차게 밀려드는 경우 보행 가능 수심은 더 낮아질 수밖에 없다. 2014년 국립재난안전연구원 실험에선 무릎 높이에 해당하는 45.5cm 이상 침수된 상태에서 계단을 오를 경우 남녀를 불문하고 대피할 수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셋째, 참사가 난 지하차도는 상습 범람 하천인 미호강과 불과 300∼400m 떨어져 있다. 이번처럼 미호강이 범람할 경우 지대가 낮은 해당 지하차도는 급속히 침수될 수밖에 없는데, 다른 지하차도처럼 50cm 침수 여부를 따지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 한 지자체 관계자는 “지자체가 교통 통제 기준을 정하더라도 하천 인근 지하차도에는 별도 기준을 적용하는 게 맞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충북도의 50cm 규정은 합리적이지도 않지만 보편적이지도 않다. 지하차도 통행 제한 수심은 서울은 10cm, 부산은 10∼15cm다. 서울시 관계자는 “서울은 인구가 많은 만큼 피해를 줄이기 위해 선제적 기준을 정한 것”이라고 했다.
이번 참사를 두고 지난해 경북 포항 아파트 지하주차장 참사, 3년 전 부산 초량지하차도 참사와 판박이란 말이 나온다. 제 역할을 못 한 관리자, 급속히 유입된 물, 부실했던 방재 설비 등 공통점이 많기 때문이다. 차이가 있다면 희생자 수가 3명, 7명, 14명으로 갈수록 커졌다는 것이다.
앞으로도 지하공간 침수 사고는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지하공간 활용이 늘어나는 동시에 극한호우 등 이상기후가 일상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향후 지하에서 대형 참사가 벌어지는 걸 막기 위한 시작은 50cm 침수 규정에서 보여지는 적당주의를 버리는 것이다. 그리고 면밀한 검토를 통해 보다 합리적이고 현실적인 방재 규정을 만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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