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기업인 대만 TSMC가 미국 애리조나주에 짓고 있는 공장의 가동 시점을 1년가량 늦추기로 했다. 현지 반도체 전문 인력을 확보하는 데 문제가 생겨서다. 반도체지원법, 인플레이션감축법(IRA) 등을 만들어 세계의 첨단산업 공장을 빨아들여온 조 바이든 정부의 행보가 인력난이란 암초를 만난 셈이다.
류더인 TSMC 회장은 최근 “애리조나 공장의 반도체 생산이 2025년으로 연기될 것”이라고 했다. 내년부터 5나노급 칩을 생산하겠다던 계획을 늦추겠다는 것이다. 첨단장비를 설치할 만큼 숙련된 인력이 부족하다는 점을 이유로 들었다.
이 같은 미국의 인력난은 예견됐던 일이다. 미국 제조업체들은 1980년대부터 연구개발(R&D), 설계 같은 핵심 기능만 자국에 남기고, 생산은 한국 대만 중국에 맡겨 왔다. 하지만 도널드 트럼프 정부 때부터 ‘메이드 인 아메리카 전략’이 본격화됐다. 국내외에서 첨단산업 투자가 미국으로 급속히 쏠리기 시작하자 공장을 세우고, 운영할 기술자가 부족해진 것이다.
컨설팅업체 매킨지앤컴퍼니는 2030년까지 미국의 반도체 전문인력 부족 규모를 39만 명으로 추산한다. 삼성전자, TSMC, 인텔 3곳이 향후 4년 안에 미국에서 새로 채용하려는 인력만 1만3000여 명이다. 1996년부터 현지에서 반도체 사업장을 운영해온 삼성전자는 사정이 나은 편이지만 치열한 인력 쟁탈전을 피하긴 어렵다.
미국만의 일도 아니다. 반도체가 주력 수출품인 한국, 대만은 물론이고 반도체 산업 재건에 나선 일본, 독일 등도 인력난에 허덕이고 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각국 정부는 외국 첨단산업 기술인력에 대한 비자 발급 혜택을 앞다퉈 늘렸다. 한국까지 찾아와 높은 처우를 내걸고 ‘기술인력 사냥’에 나서는 해외 기업도 많아지고 있다.
본격화한 ‘글로벌 인재 전쟁’ 시대에 맞춰 정부와 기업은 경각심을 높여야 한다. 한국 기업이 해외에 세우는 첨단공장에 나갈 인력들까지 고려한다면 반도체 인재 15만 명을 2031년까지 키운다는 정부의 목표도 너무 느슨하다. 핵심인재 유출을 막기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한편 해외 기술인력을 한국에 끌어오기 위한 경쟁에도 뛰어들어야 한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