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엉 우는 노인[내가 만난 名문장/이미상]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7월 23일 23시 2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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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하나, 기억나는 꿈이 있어요. 어떻게 된 일인지, 오늘은 내가 죽는다는 걸 알고 있는 날 아침이었죠. 신문을 구석구석 읽으면서 핵 폐기의 낌새는 없구나, 단념하면서 엉엉 우는, 그런 꿈이었죠.”


―오에 겐자부로 ‘책이여, 안녕!’ 중

이미상 소설가
이미상 소설가
올해 초, 오에 겐자부로가 타계했다는 소식을 듣고 위의 문장을 떠올렸다. 소설 ‘책이여, 안녕!’은 소설가인 고기토와 그의 친구인 건축가 시게루가 노년기에 마지막으로 ‘어리석은’ 테러를 모의하는 내용이다.

처음부터 소설은 노인이 품어야 할 바람직한 자세로 지혜가 아니라 어리석음을 제시한다. 실제 소설에서 노인 테러 이인조는 자동차 전복 사고를 당하는 등 몸소 몸을 구르고 피를 흘리며 분투한다. 그러한 과격함은 대체 어떻게 가능한 것일까.

자신이 오늘 죽는다는 것을 알면서 깬 아침에, 핵전쟁의 가능성이 남은 세계가 자신이 죽은 이후에도 계속되리라는 암울함 때문에 엉엉 우는 주인공을 보며 오에 겐자부로를 비롯해 내가 존경하는 사회운동가들을 떠올렸다. 그들도, 어쩌면 그들이 더욱, 자신들이 바라는 사회적 변화가 쉽게 실현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안다. 그럼에도 자신이 죽는다는 것을 아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허둥지둥 집 밖으로 나가 신문을 집어 들고 들어와 손톱으로 신문 갱지에 금을 그어가며 희망의 징후를 찾는다. 징후는 발견되지 않고 그들은 엉엉 울면서 잠에서 깬다.

나는 이러한 프로세스가 너무도 신기하다. 어떻게 (정확한 분석에 기초한) 비관이 체념이라는 루트가 아니라, “좋아, 한번 해보자!” 하는 실천의 루트로 이어질 수 있을까. 그러나 그 ‘어리석은’ 꿈에 나 같은 이도 이끌린다. 오에 겐자부로의 혼은 고향의 나무 밑동으로 돌아갔지만 그가 남긴 글과 그 글에서 파생되어 우리의 뇌에 강한 스크래치를 남긴 이미지들, 예컨대 핵 폐기의 낌새를 찾으며 엉엉 우는 노인의 간절함 같은 것은 영원히 남아 있다.

#엉엉 우는 노인#어리석은 테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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