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간 교사 60만 명 사직으로 ‘교실 붕괴’
정치 스며든 ‘부모 권리’ 운동에 교권 추락
“교직이 생명을 위협하는 직업이 돼서는 안 됩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4월 ‘올해의 교사’ 수상식에 참여해 “교실에 있는 학생들은 교사의 아이들”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올 1월 버지니아주(州)의 한 초등학교에서 한 교사가 여섯 살 초등학생이 집에서 들고 온 총기를 압수하려다 손과 가슴에 총상을 입은 사건 이후 미국에선 교권 논쟁에 불이 붙었다. 이 학생은 과거에도 교사 폭행 전력이 있었지만 학생 부모가 특수학급 배정을 거부했다. 교사들이 수차례 교육청에 이 학생과 학부모에 대한 우려를 전달했지만 교육당국은 이를 무시했다는 사실도 뒤늦게 드러났다.
비단 이 사건뿐만 아니라 미국의 ‘교실 붕괴’는 심각한 실정이다. 미국교육협회가 미 전역의 초등교사 15만 명을 조사해 내놓은 지난해 보고서에 따르면 초등교사 10명 중 3명 이상이 학부모로부터 위협을, 14%는 학생들로부터 신체적 폭력을 당했다고 답했다.
이렇다 보니 한때 미국에서 존경받는 직업이었던 교사는 이제 미국에서 대표적인 기피 직업이 됐다. 해리스폴 여론조사에선 자신의 자녀가 교사가 되길 원한다고 응답한 학부모가 2009년까지 꾸준히 70%를 넘겼지만 2022년에는 37%로 떨어졌다. 교권이 땅에 떨어지자 미국 교사들은 교실을 등지고 있다. 2020년부터 지난해까지 교직을 그만둔 미국 전역의 공립교사는 60만 명에 육박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미국 교실 붕괴는 ‘부모 권리(parental rights)’ 운동이 본격화되면서 교권에 대한 침해가 확산된 것과 무관치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비판적 인종이론’ 교육이나 젠더 이슈 등을 둘러싼 ‘문화전쟁’이 극심해짐에 따라 일부 학부모 단체들과 연대한 공화당 강경파가 학부모가 교과 과정이나 교육 방식에 대해 개입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을 잇달아 채택하면서 교권이 추락하고 있다는 것. 워싱턴포스트(WP)는 3월 기사에서 “전국적인 교사들의 교육권 박탈과 법적 보호 약화가 교직에 대한 폄하와 맞물린 것은 우연이 아니다”라며 “교사와 학생의 관계를 폄하하는 움직임은 헌법에 보장된 양질의 교육을 훼손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의 사례가 무겁게 다가오는 것은 최근 국내에서 벌어지고 있는 비극적인 사건들과 겹쳐 보여서다. 국내 현직 교사들은 우리나라의 교권 보호 제도가 ‘교실 붕괴’를 겪고 있는 미국과 비교해서도 형편없는 수준이라고 입을 모은다.
실제로 미국 교사들은 충고를 거듭 무시하는 문제 학생은 다른 학생들이 수업 방해를 받지 않도록 생활지도 담당에게 보내 격리시키거나 귀가 조치할 수 있다. 학부모가 귀가 조치를 무시하면 학교는 방임으로 고발할 수 있는 장치도 마련돼 있다. 학생이 폭력을 행사하면 교사는 스쿨폴리스에 연락해 제압을 요청할 수 있고, 또 교사에게 폭력을 가한 학생은 고발을 당해 유죄가 확정되면 학교 반경 500m 이내 접근이 금지된다.
미국에선 교권 보호를 위한 추가 입법 움직임도 이어지고 있다. 미 상원에는 일과 후 교사들의 일상을 방해하는 행위를 경범죄로 처벌하는 법안이 발의됐고 루이지애나주(州) 등 일부 지역은 교사의 훈육에 면책권을 주는 방안이 추진되고 있다.
국내에서도 이제라도 교권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하지만 교권 강화와 맞물린 학생인권조례 재정비를 두고 일각에선 ‘학생 인권과 교권은 상충되는 개념이 아니다’라는 반대 목소리가 나온다. 일견 그럴듯한 논리지만 교사들을 싸잡아 학생 인권의 침해자로 규정하고 교사가 하지 말아야 할 행동들을 모호한 표현으로 잔뜩 모아놓은 학생인권조례를 두고 어떻게 교권을 보호하겠다는 것인지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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