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체를 알 수 없는 수상한 국제 배송 우편물들이 전국에 무작위로 유포되고 있다. 울산에서 해외 소포를 개봉한 사람들이 어지럼증과 호흡 곤란, 손발 저림 증세 때문에 병원으로 이송된 사실이 알려지면서 기체성 유해 물질이 담겨 있었을 가능성이 제기되기도 했다. 이후 나흘간 경찰에 신고된 의심 우편물 건수가 2000건을 넘었다.
우편물의 발신처는 대부분 대만 타이베이로 돼 있고 말레이시아와 우즈베키스탄 등도 일부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대만 측에 따르면 이 우편물들은 중국 광둥성 선전시에서 발송된 것으로, 대만을 경유해 한국에 들어왔다고 한다. 봉투에 중국이 아닌 대만을 발신처로 적고 실제 대만에서 보낸 것처럼 누군가 조작했을 수 있다는 의미다. 주한 대만대표부에 이어 대만의 부총리급인 행정원 부원장까지 나서 “끝까지 실체를 파헤치겠다”고 한 것은 혹시 모를 외교적 파장까지 감안했기 때문일 것이다.
신고된 우편물의 대다수는 안에 립밤 같은 작은 상품이 들어 있거나 아예 비어 있었다고 하니 ‘브러싱 스캠(brushing scam)’일 가능성도 있다. 온라인 쇼핑몰이 실적과 평점을 조작하기 위해 주문하지도 않은 물건을 익명의 다수에게 발송하는 수법이다. 문제의 울산 소포에 들어 있던 흰색의 반죽 혹은 가루에서는 분석 결과 화학, 생물, 방사능 위험 물질이 검출되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해도 의심스러운 국제 우편이 한꺼번에 국내에 대량 유포되고 있는 상황은 국민의 불안을 키우기에 충분하다. 만에 하나라도 독극물이나 폭발물이 들어 있는 소포가 포함돼 피해로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는 9·11테러 이후 탄저균이 담긴 우편물로 20여 명이 감염되고 5명이 사망한 사례가 있다. ‘브러싱 스캠’의 반복으로 경각심이 느슨해진 틈을 타서 누군가 이를 실제 생화학 테러에 악용할 수도 있다.
정부는 관련국들과 긴밀히 공조해 우편물 발신자와 한국 발송 경위, 목적 등을 분명하게 밝혀내야 할 것이다. 국가정보원 대공수사력 약화 혹은 정부의 대응을 문제 삼으며 여야가 네 탓 공방을 벌일 때가 아니다. 차제에 해외 우편물의 통관 검사 시스템도 강화해야 한다. 해외 직구가 늘면서 급격히 증가하는 국제 소포가 국민의 안전을 위협하는 매개체가 돼서는 안 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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