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서울 마포구 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푸치니 오페라 ‘투란도트’ 야외공연의 감흥은 지금도 새롭다. 이 공연 이전 중국 자금성 특설무대부터 같은 공연을 펼쳐 세계인의 화제를 낳았던 장이머우(張藝謀) 감독의 육중한 영웅적 미학은 듣던 대로 대단했다.
가장 마음 깊이 다가온 것은 작품 속 군중의 처리였다. 검은 옷을 입은 군중은 거대한 무대에서 모이고 흩어지며 장관을 이뤘다. “그래, 이것이 푸치니가 생각한 군중이겠지.”
‘투란도트’는 1924년, 푸치니의 죽음과 함께 미완성으로 남은 오페라다. 다른 작곡가가 마지막 부분을 완성해 1926년 초연했다. 이 작품에서 푸치니와 그의 대본작가들은 이제껏 없던 캐릭터를 창조했다. 이 오페라의 시작부터 이 캐릭터를 부르는 호명(呼名)으로 시작한다. 그것은 베이징의 군중(Popolo)이다.
거의 모든 오페라에는 합창이 나온다. 그러나 대부분의 장면에 맞춰 다양한 역할로 분(扮)할 뿐이지, ‘군중’이라는 단일한 역할을 맡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투란도트’ 속 군중은 어떤 성격을 가진 캐릭터일까?
그들은 지배질서에 의해 핍박과 고통을 받는다. 명령 한마디로 하룻밤 잠까지 박탈당하면서 죽음의 위협을 받는다. 관리들이 채찍을 휘두르거나 밀칠 때마다 비명과 한숨을 내뱉는다.
한편으로 이 군중은 기존 질서의 도전자에게 자신들의 꿈을 투사하고 성원을 보낸다. 투란도트 공주의 수수께끼 풀기에 도전한 칼라프 왕자에게 보내는 그들의 응원이 그렇다. 그러나 희생 제물을 찾는 순간 그들은 한순간에 표변해 지배질서와 함께 희생자를 박해한다. 칼라프 왕자의 이름을 아는 시녀 류를 투란도트 공주가 찾아내자 군중은 투란도트 편에서 ‘젊은이의 이름을 말하라’고 압박한다. 호기심의 시선을 빛내며. 그러나 류가 스스로 목숨을 끊자 언제 그랬냐는 듯 류에게 한없는 동정을 보낸다.
한마디로 이 오페라에서 군중 또는 민중은 쉽게 변하며 쉽게 조종당하는 존재다. 왜 이렇게 그려졌을까?
20세기가 끝나던 시점, 영국 공영방송 BBC는 20세기를 민중의 세기(People’s Century)로 정의한 다큐멘터리를 반영했다. 큰 반향을 불러온 이 다큐멘터리에서 보듯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민중’ ‘인민’ ‘국민’이란 개념은 공산권과 자유진영 모두에서 긍정적인 의미를 담게 됐다. 그러나 그 이전에는 꼭 그렇지만은 않았다.
독일과 이탈리아, 스페인 등의 파시스트 진영이나 소련의 볼셰비키는 민중이 가진 힘에 주목하고 그들의 조직화에 큰 힘을 쏟았다. 그러나 그들은 민중이 쉽게 조작될 수 있다는 점을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의 정치철학은 과두정(oligarchy)이었고 민중은 의사결정의 주체가 아니었다.
당시 민중에 대한 대표적인 시각은 파시스트가 아니었던 스페인 사상가 호세 오르테가 이 가세트(1883∼1955)가 스페인 내전 이전에 발표한 ‘대중의 반란(La rebelion de las masas·1930년)’에서도 읽어낼 수 있다. 이 책에 나타난 대중의 모습은 변덕스럽고 쉽게 휘둘리며 독립적인 사고 능력이 없는 의심스러운 존재다. 말하자면 푸치니 오페라 ‘투란도트’에 묘사된 대중은 그 시대 지식인들이 인식한 전형이었다.
오늘날 대중 또는 민중은 이보다 훨씬 주체적이고 능동적이며 합목적적이고 긍정적인 가치를 갖는 걸로 묘사된다. 그렇다면 ‘투란도트’에 묘사된, 그리고 이 가세트가 경고한, 수동적이고 비인격적이며, 쉽게 표변하고 조종당하며, 억압에 동참하기까지 하는 대중은 이제 사라진 것일까.
인류는 자신이 가짜뉴스의 생산자이면서 기존 미디어를 ‘가짜뉴스’라고 공격하는 인물이 세계 초강대국의 지배자가 되는 것을 지켜봤다. 그는 그 나라의 유력한 차기 대권 주자이기도 하다. 한편으로는 스탈린을 연상시키는 개인숭배의 그림자가 다른 초강대국에 드리워지고, 그쪽 대중의 다수가 그 체제를 지지하는 사실도 보고 있다.
서울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는 8월 15∼20일 ‘투란도트’가 공연된다. 서울시립오페라단도 10월 26∼29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투란도트’를 공연한다. 두 자리에서 푸치니의 시대와 이 시대 ‘대중’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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