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연극계에선 연극 ‘나무위의 군대’로 9년 만에 연극 무대에 돌아온 배우 손석구의 ‘가짜 연기’ 발언을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문제의 발언은 올해 6월 서울 강서구 LG아트센터서울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나왔다.
“350석 규모의 소극장 무대에서 마이크를 차고 연기하는 이유”를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 손석구는 “(과거) 연극할 때 나보고 사랑을 속삭이라고 하는데, 그럴 거면 마이크를 붙여주든가 하지. 왜 그렇게 가짜 연기를 시키는지 이해가 안 됐다. 그래서 연극을 관뒀다. 다시 연극을 하면서는 내가 하는 연기 스타일이 연극으로 다시 왔을 때 되는지 보고 싶었다”고 답했다. 특히 답변 중 ‘가짜 연기’라고 언급한 부분이 논란이 됐다.
논란에 불을 지핀 건 동아연극상 등 굵직한 국내 주요 연극상에서 연기상을 휩쓴 배우 남명렬이었다. 남 씨는 14일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계정에서 손석구의 발언이 담긴 기사를 링크하며 “속삭여도 350석 정도는 소리로 채우는 배우는 여럿 있다. 모든 연기는 허구의 인물을 연기하는 것일진대 진짜 연기가 무엇이라 규정하는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오만하다”고 지적했다.
연극인들의 반응은 대개 남 씨의 입장과 비슷했다. 한 중견 연극 연출가는 “가짜 연기란 말에 어폐가 있다. 연극은 원래 허구인 가짜다. 처음부터 무대라는 공간을 집이나 바다, 왕궁 등이라고 치고 그 허구의 공간에서 배우와 연출 간의 약속을 통해 이야기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라며 “‘가짜 연기’란 말이 성립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유명 연극 연출가는 “보통 연극 무대에선 마이크를 잘 사용하지 않는다. 무대 위에서 정확한 딕션과 호흡, 발성으로 대사를 전달하는 것 역시 중요한 연기술 중 하나이기 때문”이라며 “연극인이 마이크를 사용하지 않는 건 오페라 무대에서 성악가들이 마이크를 쓰지 않듯 자존심의 영역이다. 헌데 이를 두고 ‘가짜 연기’ 운운하는 것은 연극의 메커니즘을 잘 모르는 것 같다. 손석구가 매체 연기로 뜨기 전 연극 작품을 몇 편이나 했는지 되묻고 싶다”고 꼬집었다.
손석구는 논란이 일자 최근 한 방송사와의 인터뷰에서 “남명렬 선배에게 손편지를 써서 사과했다”며 뒤늦게 반성하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손석구가 사과해야 할 대상은 남 씨 외에도 또 있다. 바로 시간과 돈을 들여 그의 연기를 보러 극장을 찾은 관객들이다. 손석구는 가짜 연기 발언 외에도 “다시 내가 하는 연기 스타일이 연극으로 다시 왔을 때 되는지 보고 싶었다”고 언급했다. 연극 무대는 주연 배우의 연기 스타일을 실험하는 테스트 베드가 아니다. 많은 연극 배우들이 공연 전 몇 달간 연습 기간을 가지는 건, 그 과정에서 다양한 연기 스타일을 고민하고 동료 배우들과 합을 맞춘 뒤 완벽한 무대를 선보기 위함이다. 그것이 바로 2시간 넘게 객석에 앉아 자신들의 연기를 관람하는 관객에 대한 예의이기 때문이다.
기자간담회가 열리기 전 이미 손석구의 티켓파워로 해당 공연은 전석 매진된 상태였다. 무대에 오르기 전부터 흥행이 보장됐기 때문일까. 손석구의 발언엔 오만함이 묻어 있었다. 제아무리 잘나가는 스타일지라도, 활동하는 영역과 인기의 근간이 되는 팬을 향한 존중은 갖춰야 할 기본 개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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