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사랑하면서 오래오래 건강하고 행복하게 사는 것. 가족에 대한 바람은 누구나 비슷할 테다. 가정의 화목과 건강이 대를 이어 내려간다면 그보다 더 기쁜 일이 있을까. 핀란드의 상징주의 화가 후고 심베리도 그런 이상을 품고 가족에게 헌신하는 사람이었다.
해마다 여름이 되면 심베리는 핀란드의 조용한 바닷가 마을 니에멘라우타로 가족 여행을 떠났다. 그곳 별장에 머물며 가족의 일상을 그리곤 했다. ‘저녁 무렵에’(1913년·사진) 역시 니에멘라우타에서 그려졌다. 그림 속 모델은 심베리의 아버지 니콜라이와 그의 아들 톰이다. 당시 아버지는 90세, 아들은 2세였다. 저녁노을이 질 무렵 노인과 손자는 다정하게 손을 잡고 바닷가를 산책 중이다. 흰 수염 노인의 검은 옷과 금발머리 아이의 하얀 옷이 대비를 이룬다. 바다 쪽으로 선 노인은 자연으로 돌아갈 시간이 가까워지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반면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한 아이는 생의 시작을 상징한다. 군 공무원이었던 니콜라이는 10명이 넘는 자식을 낳았는데 심베리가 태어났을 때 이미 51세였다. 늦게 결혼한 심베리는 38세 때 첫아들 톰을 얻었다. 대가족을 부양하며 자신을 길러준 아버지를 이제는 아들 심베리가 보살피는 중이었다. 그림은 할아버지와 손자만 묘사하고 있지만 두 사람을 보는 화가의 시선까지, 실은 3대를 보여주고 있다. 사랑으로 이어진 3대 가족이 이 그림의 진짜 주제인 것이다. 심베리는 사랑하는 아버지와 아들이 오래오래 건강하고 행복하길 간구하며 붓을 들었을 테다.
그의 기도가 통한 걸까. 니콜라이는 그 후로도 2년을 더 살다 92세에 세상을 떠났다. 아들 톰도 94세까지 장수했다. 안타까운 건 화가 자신이었다. 아버지 타계 2년 후 병으로 세상을 등졌다. 향년 44세였다. 아버지와 아들이 살았던 생의 절반도 채우지 못한 삶이었다. 그래도 3대 가족의 사랑과 행복을 화폭에 영원히 새겼으니 그나마 위안이 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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