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리학자의 ‘버드워칭’[이기진 교수의 만만한 과학]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7월 27일 23시 4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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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진 교수 그림
이기진 교수 그림
요즘 새로운 취미가 생겼다. ‘버드워칭’이다. 물리학자가 무슨 새를 관찰하냐 하겠지만 새를 찾아다니는 것이 그렇게 흥미로울 수가 없다. 이 취미를 갖게 된 이유를 설명하자면 이렇다. 인왕산 아래 청운동으로 이사를 했다. 청운동 산자락으로 이사한 후 내게 찾아온 가장 큰 삶의 변화는 새벽에 잠이 깬다는 점이다. 정확히 오전 4시 48분. 이때 뻐꾸기가 운다. “뻐꾹 뻐뻐꾹.”

이기진 서강대 물리학과 교수
이기진 서강대 물리학과 교수
창을 열면 뻐꾸기 소리가 더 크게 들린다. 뻐꾸기는 집 앞 커다란 단풍나무에서 잠시 울다가 금세 사라진다. 다른 새 둥지에 자신의 알을 탁란하는 불안한 뻐꾸기 처지를 생각하면 그 울음소리가 이해된다. 이른 새벽, 주변의 하늘을 보면 많은 새가 하늘을 분주히 날아다닌다. 이제껏 경험해 보지 못한 새벽 풍경이다.

동쪽 하늘에서 푸르스름한 여명의 빛이 산란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북악산 자락으로 태양이 서서히 떠오른다. 둥근 지구가 자전하면서 만드는 새벽 풍경이다. 이때부터 일어나 하루를 시작하게 된다. 예전엔 상상할 수 없었던 시간인데, 정신은 어느 때보다 맑고 일찍 일어난 새처럼 바쁘다.

주말엔 새소리에 이끌려 인왕산 숲에 들어가 새를 찾아다닌다. 저 새 이름은 뭘까? 이런 궁금증을 안고 집으로 와서 586종의 새 사진이 담긴 우리나라 야생조류 도감을 뒤적인다. 더러 이 이야기를 하면 “그걸 해서 뭐 하게” 하는 반응이 나온다. 하지만 나는 궁금하다. 내가 사는 뒷산에 어떤 새가 살고 있는지. 새들의 울음소리를 들으면 어떤 새인지 알고 싶다.

DNA의 이중나선 구조를 발견해 1962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한 제임스 왓슨도 버드워처였다. 그는 일곱 살 때 아버지로부터 새 관찰법을 배웠다. 왓슨의 아버지는 ‘새와 함께하는 여행’이라는 책을 왓슨에게 선물해 주고는 새를 관찰한 내용을 꼼꼼하게 기록해 두라고 처음부터 가르쳤다. 자신의 관찰을 기록하고 이를 근거로 지식을 확대하는 것은 과학 하는 방법의 기초다. 아마도 왓슨의 아버지는 즐거움에 기반한 삶의 가장 중요한 과학적 기술을 가르쳐준 것이 아닐까?

대학 시절 왓슨은 양자파동역학의 발명자이자 1933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슈뢰딩거의 ‘생명이란 무엇인가?’를 읽고 감명을 받는다. 슈뢰딩거는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유전정보를 전달하며 생명의 영속성을 유지하는 것이 유전자 때문이라고 판단했다. 왓슨은 새에 대한 애정이 그를 생명과학의 길로 인도했고, 유전자에 대한 슈뢰딩거의 양자역학적 접근이 유전학 연구로 이끌었다고 회상한다. 버드워칭에서 시작한 과학적 호기심은 훗날 DNA의 이중나선 구조 발견으로 이어진다. 이처럼 과학적 여정은 관찰을 토대로 사실의 본질을 찾아가는 창의적인 과정이다.

사교육, 입시, 킬러 문항 등 논의가 한창 뜨겁다가 뻐꾸기 울음처럼 일순 사라졌다. 얼마 전까지 강조되던 학문의 융합이라는 단어 역시 사라졌다. 청소년들이 겪을 사회 가치관의 급격한 변화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변별력, 등급, 평가 등이 아니라 호기심이 과학이 되는 기쁨, 관찰하고 배우고 생각하는 일의 즐거움을 알려주고 싶다.

#물리학자#버드워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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