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견새 소리마저 슬프지 않고, 애끊는 원숭이 울음조차 애절하지 않네. 달빛 아래 뉘 집에서 다듬질하나. 소리 소리마다 애간장이 끊어진다. 다듬이 소리 이 나그네 위한 건 아니련만, 듣는 나그네 머리카락 절로 하얘진다. 그 소리 옷을 다듬질하려기보단, 나그네더러 어서 귀향하라 재촉하는 것인지도. (杜鵑聲不哀, 斷猿啼不切. 月下誰家砧, 一聲腸一絶. 杵聲不爲客, 客聞髮自白. 杵聲不爲衣, 欲令遊子歸.)
―‘다듬이 소리를 들으며(문침·聞砧)’·맹교(孟郊·751∼814)
다듬이 소리, 우리의 기억 저 너머로 잊혀져 가긴 해도 어머니를 향한 그리움처럼 포근한 음성이다. 간단(間斷)없이 아련한 노스탤지어를 불러일으키는 정겨운 울림이다. 한데 객지를 떠도는 시인에게 이 울림은 외려 ‘소리 소리마다 애간장이 끊어지는’ 아픔으로 다가온다. 이를 시인은 피 토하듯 울음 우는 두견새와 단장(斷腸)의 원숭이에 견준다. 전설 속 망제(望帝) 두우(杜宇)가 죽은 후 두견새로 변하여 구슬피 망국의 한을 울었다는 비탄(悲嘆)의 화신. 붙잡힌 새끼를 구하려 어미 원숭이가 안간힘을 쓰다 애간장이 다 끊어졌다는 애절한 모정. 그런 두견새와 원숭이의 비통조차도 자신과는 비견될 수 없다고 탄식한다. 다듬이 소리에 뭉클 치솟는 사모(思母)의 정 때문에 나그네는 머리카락마저 하얗게 셀 지경이다. 마침내 시인은 다듬이 소리에서 자신의 귀향을 재촉하는 목소리를 감지한다.
예부터 다듬질을 읊은 시의 주인공은 주로 남편을 변방 수자리로 내보낸 아내들. 오랜 원정에 대한 원망과 그리움이 교직(交織)하는 정서를 표출했다. ‘장안 하늘엔 한 조각 달, 집집마다 다듬이 소리. … 언제면 오랑캐를 평정하고 낭군께선 원정을 마치실는지’라는 이백의 시가 그 예다. 다듬이 소리를 사모곡으로 연결한 맹교의 착상은 그래서 더 참신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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