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박중현]일본은행의 조용한 변심… 무제한 돈 풀기 끝났나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7월 31일 00시 00분


코멘트
“10년물 국채금리 변동 상한을 최대 1%까지 용인하겠다.” 지난주 우에다 가즈오 일본은행(BOJ) 총재의 한마디가 세계 금융계를 놀라게 했다. 0.5%였던 상한을 두 배로 높인 이 결정이 ‘아베노믹스’ 일환으로 BOJ가 10년간 고집해온 무제한 돈 풀기의 종료 신호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코로나19 팬데믹 초기 각국 정부와 중앙은행이 푼 돈은 인플레이션(물가 상승) 역풍을 불렀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작년 3월부터 11차례에 걸쳐 금리를 5%포인트나 올려야 했다. 한국 등 대부분의 주요국이 금리를 높였지만 반대로 움직인 나라가 둘 있다. 하나는 경기침체가 더 걱정인 중국, 다른 하나는 일본이다.

▷BOJ의 단기금리는 ―0.1%다. BOJ에 돈을 맡긴 은행들은 이자를 받는 게 아니라 원금이 깎인다. 금리가 마이너스이다 보니 경기를 띄우려고 할 때 한국처럼 금리를 낮출 수 없다. 그래서 특이한 방법을 쓰는데, 국채금리 상한을 정하고 시장금리가 그 선을 넘으면 돈을 찍어 채권을 사는 식으로 돈을 푼다. 문제는 너무 많이 사들여서 일본 정부의 국채 절반 이상을 BOJ가 보유하는 기이한 상황이 됐다는 거다.

▷부실한 일본의 재정이 국채금리를 통제하는 또 하나의 이유다. ‘잃어버린 30년’간 일본 정부는 막대한 돈을 풀었다. 1989년 14.4%였던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이 2021년 263%로 올랐다. 국채의 이자를 갚는 데에만 매년 예산의 4분의 1이 나간다. 국채금리가 높아지면 이자 부담이 커지면서 정부가 쓸 돈이 부족해진다.

▷이번 결정에 글로벌 금융시장이 놀란 건 전혀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2차대전 후 첫 학자 출신 총재인 우에다는 올해 4월 취임 전 심하게 왜곡된 일본의 통화정책을 고칠 적임자로 꼽혔다. 하지만 이후 3개월간 줄곧 ‘제로 금리’ 유지에 무게를 실어오다가 이번에 방향을 확 틀었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3%대로 오른 게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조용하지만, 갑작스러운 우에다 총재의 변심에 일본 국채금리는 9년 만에 최고로 치솟았고, 엔화 가치는 폭등했다.

▷일본의 마이너스 금리는 그간 세계 자본시장에 호재였다. 일본에서 저금리로 돈을 빌려 다른 나라에 투자하는 ‘엔 캐리 트레이드’가 활발했다. 일본 국내 금리가 높아지면 이런 투자는 위축될 수밖에 없다. 싼 엔화 덕에 마음껏 일본을 찾던 한국 여행객의 부담도 커진다. 다만 엔화 약세로 강화된 일본 상품의 가격 경쟁력에 치이던 한국 수출기업에는 도움이 된다. 새로운 길로 접어든 BOJ의 작은 변화까지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일본은행#조용한 변심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