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인승 승합차를 개조한 국내 119구급차가 너무 비좁아 적절한 응급조치를 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소방 구급대원들로부터 나온다. 중증외상, 심정지 등 위급한 환자를 병원으로 옮기려면 구급차 내에서 심폐소생, 기도 확보 등을 할 수 있어야 하는데 현행 구급차에선 충분한 공간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환자를 살리는 공간인 구급차에서 외려 환자가 위험에 빠지는 일이 언제든 발생할 수 있다는 뜻이다.
현재 국내 119구급차 1811대 가운데 1737대(95.9%)는 12인승 기반의 소형이다. 15인승 기반의 중형 구급차는 74대밖에 안 된다. 12인승은 앞뒤 길이가 짧아 구급차의 핵심인 환자 머리맡 공간이 나오지 않는다. 기도 확보를 위한 튜브 삽관은 원래 머리 위에서 목 안쪽까지 보며 해야 하는데 지금은 옆에서 비스듬히 할 수밖에 없다. 이송 도중 심정지가 오면 들것 통째로 차 밖으로 빼내 심폐소생술을 해야 한다. 또 중증외상 환자는 구급대원 3, 4명이 동시에 보살펴야 하는데, 동선이 겹칠 위험이 높아 신속한 처치가 어렵다고 한다.
미국과 일본 등 선진국에선 14∼15인승을 주력으로 쓴다. 널찍한 공간에 충분한 장비를 싣고 여러 명이 환자를 돌볼 수 있다. 중형을 타본 국내 소방대원 대상 설문조사에 따르면 81%가 움직임이 자유로운 중형을 선호했다. 하지만 중형 구급차 추가 도입은 지지부진하다. 오죽하면 1993년 첫 한국형 구급차를 만드는 등 평생 응급체계 발전에 기여했던 인요한 세브란스병원 국제진료센터장이 “머리맡 공간이 없는 구급차를 쓰는 건 선진국 중 우리나라뿐”이라며 “세계적 망신”이라고 한탄했겠는가.
119구급차에 타도 응급실을 구하지 못해 1시간 이상 길 위를 떠도는 ‘응급실 뺑뺑이’가 심각한 문제다. 그런데 119구급차 안에서조차 응급조치가 쉽지 않다면 생사가 경각에 달린 환자들을 어떻게 살리겠다는 건지 우려스럽다. 지난해 119구급대가 실어 나른 중증외상 환자만 1만3500여 명이다. 구급대원들이 이 많은 환자들을 제대로 돌보도록 하는 건 사회의 몫이다. 좁은 골목길을 누빌 수 있고 필수 공간도 확보된 한국형 구급차를 정부와 자동차 회사가 협력해 서둘러 만들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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