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 시절 나의 장래 희망은 ‘선생님’이었다. 공부를 제법 했고 친구들이 모르는 문제를 물어오면 설명해 주고 이해시키는 일련의 과정이 어린 마음에도 보람찼다. 물론 ‘교사’라는 직업에 대한 사회적 인식도 한몫했다. 많은 이들이 입을 모아 ‘교사만큼 좋은 직업이 없다’ 말했고 ‘특히 여자한테는’이라 덧붙였다.(그 숨은 뜻과 부당함을 이해하기까지는 꽤 긴 시간이 걸렸다.)
학급 임원을 맡아 하며 예행연습을 했다. 소외받는 친구가 없기를 바랐고, 성적으로 인한 차별 대우의 혜택을 누리면서도 설익은 정의감에 그 주체에 대한 혐오를 감추지 않았다. ‘좋은 책 한 권’ 같은 선생님이 되고 싶었다. 마음 맞는 책 한 권이 인생을 바꾸듯, 아직 무른 마음들에 진심 어린 애정으로 좋은 변화를 더해주고 싶었다. 학생의 편에 서는 따뜻한 어른이 되어 주고 싶었다.
그랬던 꿈이 산산조각 난 것은 악명 높던 선생님 A의 말 한마디 때문이었다. “나도 옛날에는 너희들 혼내고 뒤돌아 울고 그랬어!” 처음엔 그도 좋은 선생님이 되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매년 새롭게 마음을 주고 떠나보내는 일, 쏟았던 애정과 신뢰의 상당 부분을 돌려받지 못하고 심지어는 잦게 오해받고 책망받는 일, 그 부단한 반복 속에서 숱하게 다치고 마침내 닫혔을 것이다. 나는 변하지 않을 수 있을까. 문득 두려워졌다. 삶의 선택지에서 지워버렸다.
늘 무표정으로 일관하던 선생님 B가 있었다. 당시 지금의 나보다도 어린 나이였을 텐데, 아이들은 선생님의 지적 하나하나를 ‘노처녀 히스테리’라며 힐난했다. 가끔씩 눈썹이 꿈틀거리긴 했지만 그는 웃지 않는 만큼 크게 화를 내는 일도 없었다. 그땐 그저 무서운 선생님이라고만 생각했는데 돌아보니 그것은 관성에 젖은 직장인의 얼굴, 딱 그것이었다. 이제 나는 그 표정을 이해한다. 출퇴근길 지하철에서 가끔은 거울에서 그를 만난다.
그에게 학교는 직장, 학생은 고객이었을 것이다. 어쩌면 마음을 줬다 크게 데인 일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가끔씩 입술을 비집고 새어 나오려는 웃음을 참던 그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아마 그때 그는, 사랑하려는 마음을 억누르고 있었을 것이다. 감정을 통제하는 일. 그것이 학교라는 직장에서 상처받지 않고 ‘지속 가능한 근무’를 하기 위한 그 나름의 방책 아니었을까.
사랑하는 만큼 상처받는다. 그것은 비단 연인 관계에 국한된 것만은 아닐 것이다. 점점 더 학생은 까다로운 고객이 되어가고, 점점 더 교사는 서비스직이 되어간다. 교실이 ‘직장’이 되어갈수록, 우리를 사랑해 줄 ‘선생님’은 앞으로 더더욱 만날 수 없을 것이다. ‘좋은 책 한 권’ 같은 따뜻한 어른이 되어 주고 싶어 교단에 섰던 이들은 더더욱 입술을 앙다물고 웃지도 화내지도 않을 것이고, 사랑도 신뢰도 주지 않을 것이다.
사랑도 재능이다. 우리 교실에는 이제, 사랑이라는 재능을 소거당한 차가운 기능직들만이 살아남을지도 모르겠다. 교실도, 선생님도, 아이들도 다들 조금씩 더 외로워질 것이다. 과연 무엇이 아이들을 위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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