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선인 시절 윤석열 대통령이 청와대 시대를 마감하고 용산 대통령실 시대를 선언하는 의미를 이렇게 설명한 적이 있다. 밀실 속 의사 결정을 차단하고, 대통령 권력을 공적 감시의 영역으로 가져오겠다는 뜻으로 해석됐다. 박근혜 정부 국가정보원 댓글 사건과 국정농단, 문재인 정부 청와대의 선거 개입 의혹을 수사하거나 지휘한 그가 전임 정부의 전철을 답습하지 않겠다는 뜻이라 무게감이 적지 않았다. 권력 작동의 운영체제(OS)를 달리할 거라는 말로도 들렸다.
빠듯한 일정의 이사다 보니 지난해 5월 용산 대통령실 1층에는 채 지우지 못한 국방부의 흔적이 역력했다. 엘리베이터에 국방부 로고가 보였고, 인부들의 발걸음과 전기톱 소리가 쉴 새 없이 들렸다. 석면과 시멘트 냄새도 빼놓기 어렵다. 졸속 이전 논란이 일었지만 최고 권력자의 새로운 의사소통, 새 권력이 만들어 갈 변화를 직접 관찰할 수 있다는 기대감이 교차했다.
취임 초 대통령실 1층에선 윤 대통령과 참모들을 이따금 관찰할 수 있었다. 대통령이 현관에 나와 누군가를 기다리던 모습이나, 차량으로 어딘가로 향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매일 아침 도어스테핑이 열린 건 아니라 해도 그 자체로 같은 공간에 있다는 인식이 가능했다. ‘공간이 의식을 지배한다’는 건 윤 대통령이 했던 말이다.
1년이 지난 현재. 지난해 9월 ‘바이든 발언’ 논란이 불거진 이후 임시로 설치됐던 1층 앞 가림벽은 그대로 굳어졌다. 차단벽이다. 벽의 침묵을 메우고 나선 건 윤 대통령의 국무회의 연설이나 수석비서관회의 발언이다. 작심 발언한 날엔 수천 자가 넘는다. 대통령실 선별에 따라 발언 전문이 공개된다. 일부 발언은 필터링됐다가 사후에 알려지기도 한다.
취재기자들은 이 발언을 분석하고 해석하고 참모들의 추가 설명을 들어가며 최고 권력의 행사 방향을 가늠한다. 기자들이 대통령에게 질문할 기회는 지난해 취임 100일을 계기로 열린 기자회견 이후 없다. 취임 1주년 기자회견도 검토되다 결국 간단한 식사 자리로 대체됐다. 국민에게 성실히 설명할 필요가 있는 한일 외교 정상화 등 여러 현안이 국무회의 연설로 전해졌다.
윤 대통령은 국정에 ‘글로벌 스탠더드’를 강조한다. 장관들에게도 기회가 되면 미국 출장을 가서 배우라고 조언한다. 미국은 어떤가. 한국에서 극비로 취급되는 대통령의 건강 기록까지 공개된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치료를 받은 치아 번호, 치료 방법, 치료 장소, 치료팀 이름, 치료 기간 등을 백악관이 자세히 공개한 점이 대표적이다.
한 달 뒤면 도어스테핑 중단의 계기가 된 미국 순방 중 비속어 논란 1년을 맞는다. 수해 대책과 각종 현안으로 휴가에도 제대로 쉬지 못하는 대통령이겠지만, 여름 휴가를 계기로 한 그의 정국 구상 항목에는 ‘용산 시대의 대국민 소통’도 포함될 필요가 있다. 말처럼 ‘더 불편해지더라도’ 더 자주 질문받고 대답하는 양방향 소통이 국정 신뢰를 높이는 길일 수 있다. 가림벽의 간극을 넘어 기자들을 마주하는 방법도, 브리핑룸에서 현안을 들고 간담회를 갖는 방식도 있다. 마침 캠프 데이비드에서 열리는 한미일 정상회의라는 좋은 계기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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