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경 더불어민주당 혁신위원장이 그제 “미래가 짧은 (노인)분들이 왜 (청년들과) 1 대 1 표결을 해야 하느냐”며 평균수명까지 남은 생애에 비례해 투표권에 차등을 두자는 취지의 말을 했다. 청년 좌담회 자리에서 “중학생이던 아들이 왜 나이 든 사람들이 우리 미래를 결정하느냐고 물은 적이 있다”며 꺼낸 말이다. 이어 “되게 합리적”이고 “맞는 말”이라고 했다. 청년 유권자의 정치 참여를 독려하는 차원에서 한 말이었고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단서를 달았지만, 부적절했다. 헌법 원칙에도 안 맞고, “1인 1표로 한다”는 공직선거법 146조와도 충돌한다.
▷숫자로 해석하자면 이렇다. 평균연령을 80세로 가정해 보자. 여생이 30년인 50세 유권자에게 1표가 주어진다면 60년 남은 20세 청년은 비율대로 2표를 주자는 것이다. 15년 남은 65세에겐 0.5표만 주어진다. 청년들의 투표 참여를 강조한 것이라 해도 선뜻 납득하기 힘든 논리다. 재산 성별 종교 피부색을 차별하지 않고 ‘누구나 1표’ 원칙을 위해 희생을 치른 보통선거의 역사를 생각하면 더더욱 그렇다.
▷국민의힘은 물론이고 민주당 내에서조차 비판이 나왔다. “나이로 차별 말라는 것이 헌법 정신”(이상민) “지독한 노인 폄하”(조응천)라는 지적이었다. 주로 김 위원장의 ‘친명 행보’를 비판해온 비명계 의원들이 나섰다. 민주당이 걱정하는 데는 연원이 있다. 과거 정동영, 유시민, 김용민처럼 잘 알려진 당내 인사들이 고령층의 정치 참여를 비꼬는 말을 하는 바람에 당은 홍역을 치렀고, 선거에서 손해를 많이 봤다.
▷김 위원장은 이후 침묵을 선택했다. 그런데 친명계인 양이원영 의원이 “김 위원장의 말이 맞다”고 가세하는 바람에 논란이 더 커졌다. 그는 SNS에 “지금 투표하는 많은 이들은 미래에 살아있지도 않을 사람들”이라고 썼다. 김 위원장의 문제적 발언은 고령의 유권자들은 후손들을 위한 긴 안목 없이 투표권을 행사한다는 걸 전제로 한다. 동의할 수 없다. 행사장에 온 눈앞의 청년들만 생각했을 뿐 자기 발언의 파장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지 못한 발언 아닌가.
▷정당의 내부 선거는 1인 1표가 아닌 경우가 있다. 대통령, 국회의원 선거와 달리 공직선거법 적용을 받지 않는다. 정치 신인에게 가산점을 주거나, 당비를 내는 권리당원에게는 평당원보다 투표권을 더 주는 경선 제도가 상당 기간 지속돼 왔다. 김은경 혁신위는 내년 총선에 적용할 당내 경선 룰도 주도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상태다. 김 위원장은 청년 민주당원이 고령 당원보다 더 많은 표를 행사하는 ‘되게 합리적’인 경선 룰을 소신대로 밀어붙일 수 있을까. 또 당내 토론이 시작됐을 때 양이원영 의원은 SNS 글처럼 고령의 민주당원에게 ‘청년과 달리 1표를 다 드릴 수 없다’고 설득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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