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발주한 아파트 지하주차장 공사에서 보강 철근을 무더기로 빼먹은 것은 대한민국 건설업의 민낯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사례다. 세계 최고층 빌딩과 최장 교량을 짓는 건설강국이 실력이 없어 아파트 하나 제대로 못 짓는 것은 아닐 것이다. 안전과 품질보다는 비용 절감과 이윤 극대화를 앞세우고, 이를 위해 적당주의를 용인하는 ‘부실 문화’가 발주·설계·시공·감리 등 모든 단계에 뿌리 깊게 박혀 있기 때문이다.
구조 계산을 아예 누락해 154개 기둥 전부에서 보강 철근이 빠지고, 누구의 제지도 없이 그대로 시공하는 황당한 상황은 어떻게 봐도 이해하기 어렵다. 비용을 줄이려 구조설계 과정에서 하청이 연쇄적으로 이어지는 구조가 한몫했다. 발주처가 설계용역을 맡기면 건축사, 구조기술사를 거쳐 경험이 부족한 인력에게 일감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이렇게 만든 구조설계에 문제가 없는지 다시 검토, 확인하는 과정은 없다.
설계와 시공을 최종 감시해야 할 감리 역시 유명무실하다. 선진국 공사 현장에선 감리가 준공무원 수준의 역할과 권한을 갖고 있지만, 한국에선 발주처와 시공사의 눈치만 보기 바쁘다. 현장에선 주로 은퇴한 고령자가 감리를 맡아 업무 집중도가 떨어지거나 구조설계 등에 대한 전문성이 부족한 경우가 많다. 시공사들도 비용 절감을 위해 외국인과 단발성 비숙련공을 다수 투입하다 보니 현장에서 도면을 이해하는 능력이 떨어진다.
수주 단계부터 이권이 개입한다는 의혹도 끊이지 않는다. LH 출신을 영입한 건설업체들이 특혜를 받고, LH가 부실을 방치했을 가능성은 없는지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이 2015∼2020년 LH 설계용역 등의 수주 현황을 분석해 보니 LH 출신 전관을 영입한 업체 47곳이 용역의 55.4%인 297건, 계약 금액의 69.4%인 6582억 원을 싹쓸이했다.
이번 사태로 국민들이 ‘혹시 우리 아파트는 문제가 없나’ 하며 불안에 떨고 있다. 보강 공사만으론 걱정을 잠재울 수 없다. 건설업계 및 발주기관 전반에 얽힌 비정상적인 이권 카르텔을 해체해야 한다. 단지 수사와 처벌을 통해 책임자를 문책하는 차원을 넘어 안전보다는 돈이 우선시되는 부실 문화 자체를 혁파하는 데 초점을 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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