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경제 호황기였던 2010년대 이뤄진 한국 금융권의 해외 부동산 투자에서 줄줄이 탈이 나고 있다. 코로나19 이후 재택근무 확산으로 세계 주요 도시 오피스빌딩 공실률이 급등하고, 금리까지 오르면서 수익은커녕 투자 원금까지 까먹을 위기에 처한 것이다. 국내 금융권의 뇌관으로 꼽히는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에 이어 해외 부동산 투자 손실이 올해 하반기 최대 금융 리스크로 떠오르고 있다.
미국 뉴욕 브로드웨이에 있는 ‘아메리칸이글 리테일 빌딩’에 2017년 1억400만 달러를 투자한 이지스자산운용은 최근 투자금 전액을 손실로 처리하기로 했다고 한다. 투자에 공동으로 참여한 다른 국내 금융사들 역시 수백억 원씩 손해를 보게 됐다. 뉴욕 등지의 도심 오피스빌딩 공실률이 역대 최고인 20% 안팎으로 높아지면서 건물 가격과 기대 수익률이 폭락하고 있다.
국내 자산운용사, 보험사 등이 미국 워싱턴, 영국 런던, 독일 프랑크푸르트, 홍콩 등에 투자한 대형 빌딩에서도 잇따라 부실이 생겨 투자액 상당 부분을 잃을 가능성이 커졌다. 한국 금융사뿐 아니라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스톤도 수십 %씩 손해를 보고 부동산을 처분하는 상황이다. 팬데믹 이후 선진국 기업들의 근무 방식 변화, 미국 연방준비제도의 기준금리 인상이 세계 상업용 부동산 시장에 직격탄이 됐다.
72조 원에 이르는 국내 금융권의 해외 부동산 펀드 설정액 중 30조 원은 3년 안에 만기가 돌아온다. 내년 만기 펀드만 11조6000억 원이다. 직접, 간접으로 투자한 금융회사들의 대규모 투자 손실과 이로 인한 실적 악화가 불가피해졌다. 부동산 가치가 급락했을 때 우선적으로 변제받을 수 있는 안전한 투자 대신 고위험·고수익 투자를 확대하고, 입주 기업들의 선호도가 떨어지는 노후 빌딩을 많이 사들인 것도 문제다. 투자 이익을 극대화하는 것만큼 위기가 닥쳤을 때 손실을 최소화하는 게 중요한 대체 투자의 기본 원칙을 지키지 못한 것이다.
한국 금융회사들이 지난 10년간 해외 부동산 투자를 늘려 왔지만 글로벌 경제 환경이 급변할 때 리스크를 관리해 본 경험은 많이 부족한 게 사실이다. 금융당국은 해외 부동산 투자 부실이 국내 금융 리스크와 중첩돼 ‘복합 금융위기’로 번질 가능성을 미리 차단할 필요가 있다. 금융사별 해외 투자 현황을 정확히 파악해 투명하게 공개하는 한편 충당금을 충분히 쌓도록 해 대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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