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목과 선의[이은화의 미술시간]〈278〉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8월 2일 23시 33분


더운 여름에는 시원한 바다나 강으로 떠나고 싶어진다. 인상파 화가 메리 커샛도 여름이면 지중해 연안의 휴양도시 앙티브로 떠나곤 했다.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뱃놀이 일행’(1893∼1894·사진)도 앙티브의 바다를 배경으로 그려졌다.

커샛은 미국인이었지만 파리에 정착해 살며 인상파 그룹의 일원으로 활동했다. 이 그림은 49세 때 그린 것으로, 보트를 탄 젊은 엄마와 아이를 묘사하고 있다. 엄마는 하늘색 맞춤 정장을 입고, 머리에는 꽃장식이 달린 챙 넓은 모자를 썼다. 분홍 드레스를 입은 아이의 성별은 알 수 없다. 당시 관행에 따라 어린 남자아이도 드레스를 입었기 때문이다. 이들과 마주 앉은 뱃사공은 힘차게 노를 젓고 있다. 아이를 안은 엄마는 배의 움직임에 몸을 맡기고 기분 좋게 뱃놀이를 즐기고 있는 것 같다.

사실 뱃놀이는 인상파 화가들이 즐겨 그리던 주제였다. 에두아르 마네도, 클로드 모네도, 오귀스트 르누아르도 그렸다. 그들보다 커샛은 좀 더 대담한 구도에 단순하면서도 강렬한 색채를 사용했고, 인물의 심리를 강조해 그렸다. 구도나 표현은 일본 목판화에서 영향을 받았다.

완성된 그림은 1895년 커샛의 뉴욕 첫 개인전에 대표작으로 선보였다. 비평가들은 커샛이 전통 양식으로 그린 ‘여성적’인 그림에만 우호적이었고, 이렇게 과감하고 도전적인 작품에는 비판적이었다. 뉴욕타임스의 평론가는 ‘딱딱하고 조잡하며 잔혹한 작품’이라며 ‘주제와 어울리지 않는 무례한 힘이 여성스러운 매력을 빼앗아간다’고 혹평했다. 당연히 그림은 팔리지 않았다.

작품의 가치를 처음 알아본 건 미국인 은행가 체스터 데일이었다. 미술품 수집가이기도 했던 그는 1929년 이 그림을 사들였고, 유증으로 1963년 워싱턴 국립미술관에 선물했다. 작품이 완성되고 69년 후였다. 인상파 화가 중 유일한 미국인 여성이었던 커샛의 대표작을 미국의 주요 미술관이 소장할 수 있게 된 건 은행가의 안목과 선의 덕분이었다.

#안목과 선의#뱃놀이 일행#이은화의 미술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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