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조5000억 원을 들여 구축한 재난안전통신망의 지난해 ‘기관 간’ 통신량이 전체 사용량의 1% 미만인 것으로 나타났다. 국회예산정책처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재난통신망 내 단말기 18만6000여 대의 합산 통신량은 586만 분이었다. 이 중 기관 간 통신은 5만2300분으로 0.9%에 불과했다. 나머지는 ‘기관 내’ 통신이었다. 재난통신망 도입의 취지가 재난 현장에서 기관 간의 원활한 소통을 통한 공동 예방과 대처임을 고려하면 내부 무전기같이 유명무실한 수준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나마 1%도 안 되는 기관 간 통신의 3분의 2는 매일 지방자치단체의 재난담당자가 실시하는 정기교신이라고 한다. 실제 재난 상황에선 거의 쓰이지 않은 셈이다. 재난 현장에서의 통신망 활용 미흡은 지난해 10월 핼러윈 참사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난 바 있다. 당시 재난통신망을 쓴 평균 시간은 경찰의 경우 단말기 1대당 5.8초, 소방은 10.8초에 불과했다. 정부는 올 1월 재난통신망을 통한 기관 간 공조에 차질이 빚어진 점을 인정하고 합동 훈련까지 실시하며 ‘철저한 재난 대비’를 약속했다.
하지만 최근 오송 지하차도 참사에서 똑같은 일이 반복됐다. 사고 당일 “미호천 제방이 터져 물이 넘친다”는 119 신고가 처음 접수된 건 오전 7시 51분. 이후 재난통신망을 이용한 공동 통화가 이뤄진 것은 55분 늦은 오전 8시 46분이었다. 이미 사고가 일어난 뒤였다. 이 통신망은 2분 뒤 추가 공통 통화가 이뤄진 뒤 그날 다시 이용되지 않았다. 예방과 수습 과정에서 거의 쓰임새가 없었던 사실상 ‘먹통 통신망’이었던 셈이다.
‘버튼만 누르면 통신이 가능하다’는데 현장에서 제대로 활용되지 않는다면 뭔가 불편하거나 미비한 점이 있는 것이다. 또 아무리 좋은 시스템도 그걸 담당하는 인력이 능숙하게 쓸 수 없다면 무용지물이다. 행정안전부가 4월 현장 인력 실전 교육을 처음 시작해 연내 약 2000명을 교육한다고 하지만 속도가 너무 늦다. 원점에서 재난통신망의 문제점을 조사해 실효성 있는 개선책을 내놔야 한다. 기관 간 협조가 안 돼 우왕좌왕하다가 국민 생명을 구할 골든타임을 놓치는 일이 또 벌어져선 안 된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