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호주와 뉴질랜드에서 열리고 있는 여자월드컵 축구 경기를 보고 있는 중이다. 필자는 FC서울 광팬으로서 한국에서만 40개가 넘는 경기장을 오가며 내 축구팀을 응원했고, 일본, 중국, 호주까지 날아가서 아시아챔피언스리그 경기도 봤으며 한국대표팀 경기도 50번 넘게 직관했다. 나름대로 이렇게 자랑스러운 ‘축구 응원 역사’를 이루어 냈기 때문에 이번에 직관하지는 못했지만 집에서 한국 여자축구를 응원하는 것은 나에게는 결코 놀라운 일이 아니다.
여자월드컵 축구팀에 대한 지식이 많지 않아 나라별로 축구 실력이 남자월드컵 축구팀과 비슷할 거라고 막연하게 생각했었다. 그러나 꼭 그런 것은 아닌 듯했다. 예를 들면, 중국의 남자팀은 국가적으로 투자한 자금과 노력에 비해 세계 랭킹은 꽤 낮게 나오지만, 여자팀은 ‘강철장미’라 불릴 정도로 뛰어난 기량을 발휘해 1999년에는 결승전에까지 진출하는 쾌거를 거둘 정도다.
효창경기장에서 열렸던 서울시청구단이 참여하는 WK 리그를 한 경기 걸러 한 번꼴로 보러 갔던 경력이 있어 여자축구에도 중간 열정팬 정도는 된다. 여자축구를 보는 묘미는 감정적으로 격앙될 필요 없이 90분 동안 스트레스 받지 않고 오롯이 관람을 즐기다 올 수 있다는 것이다. 내가 응원하는 FC서울팀이 경기를 할 때 내 모습을 한 번이라도 보았던 분들은 혹은 자신이 응원하는 팀이 있는 분들은 이 말뜻이 뭔지 다들 잘 아실 거다. 축구공이 골대를 사이에 두고 이 방향 저 방향으로 굴러다니는 경기 내내 울분과 기쁨과 낙담, 환호 등 인생의 희로애락이 얼마나 극심하게 감정의 기복을 타고 오르락내리락하는지 말이다.
여자월드컵을 지켜보면서 한국 국가대표 선수들에 대해 더 자세히 알고 싶은 마음이 들어 검색을 이어갔다. 2가지 팩트가 눈에 들어왔는데, 한 가지는 여자선수들 중에 김 씨 성이 매우 드물다는 사실이었다. 남자팀을 보면 11명의 선수 가운데 절반 이상이 김 씨인 경우도 있는데 여자팀엔 겨우 3명이 김 씨였다. 두 번째는 한국식 이름이 아닌 ‘페어’라는 선수의 존재였다.
한국 선수들의 첫 경기를 앞두고 BBC 기사를 통해 이 페어 선수가 미국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 태어났고, 올해 16세로 대표팀 최연소 선수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나도 내 아이들이 태어났을 때 내가 못다 한 축구선수의 꿈을 한국에서든 잉글랜드에서든 이루어 주길 바랐는데 우리 집안 혈통은 선수 유전자보다는 관람 유전자가 우성인 것 같다. 그래도 우리 딸과 비슷한 나이의 페어 선수가 한국팀에서 활약하고 있는 걸 보자니 나도 모르게 흐뭇해졌다.
월드컵 국가대표의 자격 요건은 약간 까다롭게 들릴 수 있는데 기본적으로 할머니 혹은 할아버지 쪽 나라의 대표로 뛸 수 있다. 예를 들어 아일랜드 축구팀의 구성을 보면, 영국 여권 소지자인 선수들이 많은 것을 볼 수 있는데 그것은 선수의 조부모 중에 한 명이 아일랜드 출신이기 때문이다. 잉글랜드 국가대표가 되는 것이 하늘의 별 따기만큼이나 어려운 일이기도 해서 일부 선수들은 조부모의 나라, 예를 들면 자메이카나 나이지리아의 국가대표로 뛰는 사례도 종종 있다.
영국이나 프랑스의 대표팀은 다문화적이다. 가계도를 몇백 년 거슬러 추적할 수 있는 선수도 있고, 제2차 세계대전 후 조부모나 부모가 식민지에서 이주해온 이민자 2세대 또는 3세대인 선수도 있고, 심지어 어린 시절에 귀화한 선수도 있다. 한국도 다문화 사회로 접어들었지만 스포츠팀에 있어 다문화의 영향은 아직 그렇게 크지 않다. 일부 K리그 선수들, 아이스하키팀에 한국으로 귀화한 선수들 몇몇이 전부이다.
물론 한국 축구대표팀은 이미 강팀으로 부상했기 때문에 우수한 선수들을 발굴하기 위해 세계를 휘젓고 다닐 필요까지는 없지만 럭비, 스키, 조정 같은 비인기 종목은 국내 선수가 다소 부족한 실정이라 숨은 인재들을 해외에서 발굴하려는 노력이 필요할 수 있다. 내 친구 중에도 한국에서 태어나 호주에서 자란 크리켓 선수가 있는데 한국 크리켓팀에서 뛰어보고 싶지만 실제적으로 협회 차원의 도움을 받기가 어렵다고 했다.
지금까지 한국 여자대표팀은 이번 월드컵에서 다소 부진했지만 페어 선수의 선방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그 선수가 꾸준히 경기에 임하면서 더 큰 기량을 발휘해 줬으면 좋겠다. 많은 다문화가정 출신의 선수들이 한국 국가대표팀에서 마음껏 실력을 발휘하는 날을 기대해 본다. 언젠가 K스포츠도 K팝만큼이나 국제적인 명성을 휘날리는 날이 있을 것이라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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