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 카페에서 뜨거운 물 한 잔을 부탁했다. 호흡기가 민감해 여름에도 뜨거운 커피를 마시는 편인데 때마침 감기까지 걸려 목이 꽉 부은 탓이었다.
한여름에 뜨거운 물을 청하는 손님에게 카페 주인은 차분하게 얘기했다. “조심하세요. 너무 뜨거우면 다쳐요.” 그러곤 뜨거운 물에 얼음 세 알을 넣어 주었다. “얼음이 작아지면 그때 따뜻하게 드세요”라는 당부와 함께. 얼음이 뜨거운 물 위를 휘돌며 조그맣게 사라졌다. 얼음이 녹아든 커피잔을 그러쥐었을 때, 그리고 한 모금 마셔보았을 때 느꼈다. 참 따뜻하다고. 딱 이 정도가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따뜻함의 적정 온도일까. 카페 주인에게 받아본 배려를 기억하며 ‘얼음 세 알만큼만’. 이후로 타인을 대할 때 마음에 새기는 말이 되었다.
폭염에 에어컨이 고장 났다. 무더위에 지친 건 사람뿐이 아니었던지 고장 난 에어컨이 많아서 상담 연결조차 어려웠다. 가까스로 출장 서비스를 예약했지만, 열흘 만에야 수리기사가 방문했다.
폭염주의보가 내린 한낮, 수리기사는 뙤약볕이 내리쬐는 창가에서 마스크를 착용하고 일했다. 기계를 분리하고 부품을 교체하는 작업이 꽤 복잡했던지, 아님 다음 출장까지 시간이 빠듯했던지 미리 내어준 시원한 보리차를 마실 여유가 없었다. 긴 작업 끝에 드디어 에어컨에서 시원한 바람이 나왔다. 더위에 지친 기사님께 얼음 세 알 넣은 보리차와 얼려둔 생수병을 드렸다.
“고생 많으셨어요. 생수는 가져가서 드세요.” 기사님은 단숨에 보리차를 마시더니 웃으며 말했다. “물이 달아요. 잘 마셨습니다, 선생님.” 그러곤 운동화 뒤축을 꺾어 신은 채 다음 출장을 떠났다.
연일 이어지는 폭염에 밖을 나서기 무섭다. 더워도 너무 덥고 습해도 너무 습해서 불쾌지수가 높다. 현관문을 열자마자 숨이 턱 막혔다. 살갗에 달라붙는 더위에 오늘은 또 얼마나 힘들려나 찌푸려졌다. 그때, 이웃집 문 앞에 놓인 얼음물과 메모를 발견했다. ‘택배기사님, 고생 많으십니다. 얼음물 편히 가져가세요.’ 퐁당, 더위와 짜증으로 끓어올랐던 마음이 얼음 세 알 넣은 듯 차분해졌다. 금세 녹아 따뜻해졌다.
배려는 얼음 세 알만큼이어도 충분하다. 너무 뜨거우면 다치니까 조심스럽고 세심하게, 그리고 친절하게. 누구에게나 사정이 있어 한여름에 시원한 물이 절실한 사람이 있고, 따뜻한 물이 필요한 사람도 있다. 얼음 세 알만큼의 배려를. 불볕더위가 아무리 뜨겁더라도 마음의 체감온도는 따뜻할 수 있다.
폭염경보 안전 안내 문자로 경보음이 울렸다. 택배기사를 기다리며 송골송골 녹아가는 얼음물을 보며 다짐했다. 마주치는 이들에게 조금만 친절해지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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